오늘은 그 젊은이들을 만나러 가리라 아침부터 마음 먹었다.
수업시간보다 좀 일찍 나가서 서울광장을 들러야지 했는데 그만 시간이 빠듯해져버렸다.
집을 나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업을 받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다섯 시쯤이면 수업이 끝나고 일곱시 운동하러 가는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구나 싶었지만
막상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는 거리로 나서자 다가오는 한기에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갈까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비가 오니 분향소가 오히려 쓸쓸하지나 않을까 싶어 마음을 다잡고 지하도로
들어섰다.
을지로 입구에서 시청까지 지하로 길이 이어져 있어 그 중 다행이었다.
출구로 나오자 여기저기 합동분향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잔디광장으로 들어섰다.
벌써부터 가슴은 자꾸 울먹이고 있었다. 하얀 차일 아래 라인을 따라 도열해 서있는 관계자들 중
누군가 근조리본을 달아주었다. 줄을 서서 들어서자 이번에는 해군헌병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불쑥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한 번에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영정 앞에 나란히 섰다. 마이크로 들려주는 구령에 맞추어 그들에게
인사를 한 후 꽃을 바치고 묵념을 했다.
세상에 한꺼번에 마흔 여섯의 영정 사진이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하얀 국화꽃송이에 묻힌 병사들의 얼굴은 너무나 애띠고 젊었으며 아름다웠다. 꽃보다도.
그들 위에 드리운 차양과 조문객들을 위해 세워진 차일 사이에는 작은 틈이 있어서 꽃을 바칠 때는
몇 줄기의 비를 맞아야 했다. 그 조그만 틈은 마치 저승과 이승 사이를 흐르는 강처럼 아득하기만 했고 머리에 떨어지는 차가운 빗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슬픔 만큼이나 예리하게 가슴 속으로 타고 흘렀다.
누구의 아들일까, 어느 누구의 동생이며 오빠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들의 아빠이며 젊디 젊은 아내의 지아비였을 그 얼굴들은 꽃속에 파묻힌 채 말이 없다.
남은 사람들의 아픔이나 슬픔이 아무리 곡진하다 한들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저들의 원통한 넋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서울광장의 잔디는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모두의 가슴도 그렇게 젖어 있었다.
'총이 있으면 가서 그놈들을 다 쏘아죽이고 싶어요'
분향소에서 내 앞에 가던 한 아주머니가 나를 돌아다 보며 그랬다.
원망과 슬픔이 가득한 그녀의 눈시울도 내 눈시울도 똑같이 젖어 있었다.
'우리 남편이 대령입니다. 얼마나 우는지 몰라요'
젊은 병사들이여, 우리 모두 그대들의 죽음을 이렇게 가슴 아파하고 있으니 이제는 편히 쉴 수 있기를...
광장을 빠져나와 전철을 타러 가는데 가로수 아래 한 쌍의 젊은 남녀가 거의 포개다시피 붙어 서 있었다. 저 영정 속의 젊은 병사들도 살아서 사랑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고 피끓는 젊은이답게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했는데 싶어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슬픔을 다 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