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와 어머니 (중앙 일보 LA 3/15/2010)
2010.03.16 04:08:14 조회632
그리워 지는 고향의 봄!
산에는 진달래, 들에는 개나리, 냇가에는 수양 버들이 늘어지는 고향의 봄은 수 십년 세월이
지났어도 옛 동산, 푸른 들판으로 가슴에 담겨 있다.
옛 모습, 찾아 볼수 없지만 마음에 담겨진 고향 마을을 찾아 간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산을
둘을 넘으면 산속에 “화장사”라는 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풍을 갔었다. 산길에는
나무 가지에 매 달린 울긋 불긋한 천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옆에는 작은 돌을 쌓아 올린
작은 돌 무더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서낭당” 이라고 했다.
돌 무더기 꼭대기에 돌을 주워다가 위에 얹어 놓으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했다.
아이들은 길을 걷다가 돌을 주어 돌 무더기 위에 서로 먼저 올려 놓으려고 달려들 갔었다.
즐거운 길이었다. 그 산에는 진달래가 많이 피었다. 연 분홍의 꽃은 산등성이, 바위틈, 어느곳에나
피어 있었다. 검은 바위 틈을 비집고 빼꼼이 가지를 내밀며 피는 진달래꽃은 더욱 아름다웠? 붉게
물든 산길은 예쁜 꽃 길이었다.
그렇게 아름답던 길이, 어느날 슬픈 꽃길이 되고 말았다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유해를 산속에 있는 “화장사” 에 모셨다. 매월 초하루, 보름 날은 아버지를 뵈러 어머니와 함께
가는 길이 되었다.
슬픈 진달래 꽃길, 젊은 어머니는 길게 한 숨을 쉬며 산길을 오르셨다.어머니의 한숨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세월이 흐른후 철이 들어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6남매를 두고 홀로
떠난 남편을 그리는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 앞에서 내색을 할수 없는 마음이 한숨으로 변하여
그리움으로 목이 메이셨으리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60여년이 흐른뒤, 그곳을 찾아 갔다. 깊은 산속, 산새 소리와 진달래 만발 했던 그곳은 국립 현충원이
되었다. 현충원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작은 사찰 보였다. 그 사찰이 옛날의 “화장사” 였을것이다.
현충원에서는 사찰로 가는 길을 찾을수가 없었다.
북쪽 사찰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65년전의 소녀가 되어 어머니를 생각 했다. 어머니는 슬픔을 마음으로
삭히시며 남편의 그리움으로 진달래 꽃 노래를 부르셨으리라 .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진달래 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긴 세월 지나, 그때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부르셨을 노래를 대신 불러 본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지금은 그리운 사람이 모두 떠났지만 고향 산 언덕에는 분홍, 진달래 꽃이 붉게 산을
덮었으리라… 훗날, 진달래꽃 한 묶음 꽃다발 만들어 어머니를 찾아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