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
23기 하 은희
벌써 아침 저녁 서늘한 바람이 구부러지고 비틀린
나의 뒷모습을 훑고 지나간다.
아! 가을이 깊어가네.
집에 있으면 게으름 피우고 낮잠자고 차라리 햇빛이라도 봐야지. 나태함 떨쳐버리려고 머리 질끈 동여매고 마스크 챙겨 쓰고 길을 나선다.
내 발처럼 편한 지하철을 타고 요즘 핫하다는 카페를 찾아갔다. 키오스크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대기번호가 뜨고 이삼십분을기다린다.
젊은 연인들 틈에 끼어 줄을 섰다.
눈총까지 받으며 커피 한 잔 받아드니 그 커피 내음이 향기롭다.
이것도 시간 많은 노인네에겐 좋은 경험이고 소소한 행복이다.
며칠 전 병석에서 일어나 회복 중인 친구와 만나
천천히 산길을 걸었다.
높아진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소나무숲의 맑은 공기와 나무 냄새를 맡다 보면 길가의 하이얀 벌개미취꽃이 우릴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진보랏빛의 깨알같이 귀여운 좀작살나무 열매는 어찌하여 이름이 험악한지.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우리를 비춘다.
산을 좀 더 오르니 여기 저기 색은 빨갛고 작고 귀여운 열매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마치 산호보석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듯 너무 예쁘다. 열매 이름이 뭐지? 마가목인가?
검색렌즈를 들이대니 가막살나무다.
저번에 찾았었는데 아이구 금새 잊었네.
친구의 말에 마주보며 웃는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요즈음, 마음을 비우고 살라는 건가 보다.
걷다가 힘이 들면 숲 속 벤치에 앉아 작은 음악감상회가 벌어진다.
아! 좋다. 사는 게 별 거 있나.
밀린 수다를 이어 간다. 자연스레 건강이야기부터 부모님괴 자식이야기, 친구들 소식, 꽃걸음이야기 등등으로 하루 분량 단어를 다 채운다.
차츰 회복해 가는 친구의 아직은 여윈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 행복한 마음에 구름처럼 두둥실 마음이 떠 간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온 친구와
대모산에서 같이 걸을 수 있다니 눈물이 나도록 너무 감사하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나이 들어 좋은 소식보다 부고 소식이 늘어난다.
한달 전 작은아버님께서 병환으로 소천하셔셔 모셔 드리고 돌아 오는 길.
생로병사 인생무상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아직은 내 마음은 봄인데......
가을은 마지막 정염을 불태우듯이 일록달록 물들고
석양의 황혼은 더욱 붉게 타 올라 온 하늘을 물들이는데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렸다.
여가시간을 사회를 위해 할애하는 멋진 친구들이
생각난다.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아직 현역으로 여담재를 운영하는 친구, 크고 아름다운 안젤리 미술관 관장으로 어린 화가의 꿈을 키워주는 친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매주 모여서 약봉지를 싸는 친구들.
묵묵히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젠 작은 것에 만족하고 이루려고, 가지려고 살아 온 세월은 이것으로 족하다.
앞으로의 시간은 버리고 비우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가을의 길목에서 이사도 준비해야 하고 마음이 바쁘다 .
이렇게 삶은 지속되고 미래는 열려 있다.
어려움이 닥치면 이겨내고 견뎌내고 살아내야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