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의 공동 고백 (단편 소설)
2010.01.29 14:25:43 조회775
- 여기 좀 보세요. 치과 원장님이 어느 분이세요?―
말끔하게 생긴 대학생 차림의 청년이 대합실에서 치료실을 들여다보며 말을 걸어 왔다. 점심시간이라고 잠시 쉬는 그 시간마저 환자들에게 점령당한 까닭에 피로감과 짜증이 누적된 초복날 오후 1시 반, 만사가 귀찮은 그 시간에 누가 들어오면서 원장부터 찾으니 정말 지친다.
- 진찰 받으시려면― 보험카드 먼저주세요- 접수대 박 간호사도 퉁명스럽게 받아준다.
- 진찰이 아니고요, 나는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지금 요 앞 버스 정거장 앞에 쓰러져 있는 아저씨가 이곳 치과에서 이를 뺐다는데, 죽을 것 같다고 하며, 여기 원장님을 불러달라기에 일러드리려 왔습니다. 빨리 내려가 보세요.―
말을 마치고 청년은 휑하니 나가 버린다. 아 아 홍두표다. 젠장! - 환장하겠네. 아 아 너무 힘들다. 원장은 피로와 짜증으로 지친 몸에서 노루 꼬리만큼이나 남아있던 원기마저 순간 쫙 빠져나감을 느꼈다. 벌써 며칠 째인가 이런 걸 스토킹 이라고 하는 건가 -, 근 일주일을 매일 밤낮 전화에 시달렸는데,- 버스 정류장에 쓰러져 있다는 통보는 최후통첩이요, 한판 해보자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그러니까 정확히 일주일 전, 프로레슬러 보다 더한 건장한 체구를 가진 홍두표 라는 사내가 사랑니를 뽑았다. 상악 좌측 지치, 왼편 위 사랑니를 발치 했는데, 그의 강건한 육체적 조건으로 보아 비록 지치 발치이지만, 그에게는 전혀 부담스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그 날, 저녁을 잘 먹고 9시 뉴스를 보려고 자리를 잡았을 때 첫 전화가 왔었다.
-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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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시죠?―
- 여기 반포 아파트인데요. 우리 아빠가 낮에 거기서 이를 뺏는데요. 지금 죽으려고 해요.-
초등학교 3-4 학년 여자아이의 가련한, 떨리는 목소리다. - 이건 무슨 날벼락이냐-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느긋하게 9시 뉴스를 평화롭게 보고 있던 원장의 게슴치레 뜨고 있던 원장의 눈은 순간 핏발이 선다.
- 여보세요? 아버지 좀 바꿔 주세요.-
- 안 돼요 아빠는 말도 잘 못해요.-
- 그럼 엄마 좀 부탁해요.-
- 우리 집은 엄마가 없어요―
애처로운 여아의 목소리가 떨림 속에 들려오더니 찰칵 전화기 내리는 소리로 통화가 끝난다. 아하! 이거 의료 사고구나!― 언제인가는 해결이 될 때까지, 괴롭힘을 많이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원장은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개업의사는 의료사고라는 이름으로 괴롭힘을 받는 경우 가장 힘들다. 지난달엔 원장의 고등학교 동기생인 김산부인과 원장이 그 병원에서 출생한 아기가 바뀌었다고 난리를 치는 산모 가족들의 협박으로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하는 전화가 와서, 강 건너 불같지만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덕담으로 위로와 격려만 해 주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산불이 강 이쪽에도 옮겨 붙다니, 원장은 낭패감을 금할 수 없었다.
원장의 치과는 영등포 당산동에 있는 치과인지라 반포 아파트에서는 1년에 오는 환자가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다. 더구나 사랑니를 요새 뺀 사람은 바로 그 사람 홍두표 환자다. 헐크처럼 튼튼하고 방금 레슬링 장에서 챔피언 벨트를 딴 듯한 그 사내인데- 죽는다고?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어린 딸에게 120키로 거구의 아버지가 죽는다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아니 된다. 가련한 어린 딸은 전화 음성도 떨고 있었다. 진정 죽을 지경일지라도 엄마도 없는 어린 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서야 되나, 더구나 어린 딸을 시켜서 엄살을 떠는 전화를 하게 하다니-. 원장은 모진 감정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
그러나 그것은 시작도 아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죽는다는 협박성 엄살 음성을 들어오다 보니, 그 때마다 원장은 마음이 더욱 모질어졌다. 꾹꾹 참으며 전화에 응대하다가 - 그래 차라리 죽어버려라 -하는 소리가 몇 번이고 튀어나올 뻔했다. 그런 악마 같은 마음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가며 천사의 말로 응대하다보니 미칠 것 같았다.
- 홍 선생님, 전화로 말씀하시느니, 그보다 직접 나오셔서 제대로 다시 진찰 받으심이 좋겠습니다.
- ----나가보지요 그러나 병세가 좀 나아야지, 이대로 나가면, 가다 길에서 죽을 것 같소-
이것이 어제 전화 내용 마지막 부분이다.
어제 전화 마지막 그 부분은 아래층 대로변 버스정류장에서 그대로 현실이 되어, 홍두표는 쓰러져 죽어 가고 있단다. 무쇠 같은 그 체격에 쓰러지더라도 하필 치과 바로 앞 정거장인가. 쓰러질 자리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한 그를 생각하니 이것은 쑈라는 생각이 확실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은 얼른 와서 모시고 가라는 말인데, 간호사들을 시켜, 가서 모시고 와 ?, 어림 반푼도 없는 일이다. 우선 그 거대한 덩치를 부축하려면 우리 간호사들 체격으로는 4명은 가서 부축해도 모자랄 판이다. 하물며 2 명 뿐인 간호사들로써는 어림없다.― 그리고 모셔오면, 그런 엄살쟁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쑈는 보여주는 사람만이 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원장은 천근 쇳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답답했다.
날씨도 하늘과 아스팔트가 햇볕에 녹아 달라붙을 만큼 덥고 답답한데, 짜증 플러스 긴장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이제는 분노로 바뀌었다. 전화로, 나와 보라니까, 나오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이 대목에서 그는 죽는 척을 해야 자연스런 수순일 것이다. 그가 이렇듯 버스정류장의 죽어감이라는 교묘한 연출을 해 보인다면, 그의 쑈 제 2막마저 보고 대응하는 것이 상대방을 좀더 파악할 수 있는 지피지기 병법(知彼知己 兵法)이니― ‘신경 끄고 하회를 기다려라’ ― 원장의 마음속의 컴퓨터 화면은 자동적으로 이런 댓글을 마구 써 내려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이 왕 덩치 홍두표의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간 이후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길에서 사망 할 것이라는 경고가 거짓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나가보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그날따라 기다리는 환자가 많다보니 틈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치과대학 학부시절 구강외과 강의를 하시던 박용관 은사님의 강의 중 여담이 생각나, 하회를 기다리는 점도 있었다.
-제군들은 대개 개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건물 2층에 개업을 할 것이다. 이것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층 계단을 걸어서 혼자 힘으로 걸어 올라오는 환자는 대비 없이 과감히 치료를 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들것이나 업혀오거나 층층대를 남의 힘을 빌려 오른 사람이라면, 일단 사고를 대비한 제반준비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 말씀대로라면 홍두표가 제 발로 걸어 올라온다면 치료 결과가 위중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고, 먼저 알려준 대학생과 같은 제2의 행인이 올라와 경고성 통보를 해온다면, 그 경우는 건강이 진정 위중한 것으로 경계성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학생이 다녀가고 40분은 되었을까 왕 덩치 홍두표는 제 발로 2층을 걸어 올라와 그 웅장한 몸집으로 들어섰다. 얼굴에는 고통과 절망의 표정이 깊게 드리워져, 그 체격과 지극히 대조적이다. 원장은 악마같이 들끓는 마음을 꾸욱 누르고, 천사의 음성으로 그를 마지 해야 했다.
- 그 새 많이 아파 힘드셨지요. 잠시만, 지금 치료 중인 분이 곧 끝납니다. 그 다음 우선적으로 먼저 보아 드릴게요. ―
홍두표는 그 웅장한 몸 집 속에서 .모기 소리 같은 말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장은 치료 중인 환자에게 몰두한척하면서, 그 모기 소리를 못 들은 척 무시 해버렸다. 그 내용이야 이미 일주일을 전화로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이제는 그 소리 꿈까지 꾼다. 박 간호사는 그 새 눈치 빠르게 응급상황을 대합실의 환자들에게 설명하면서 기다리는 순서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묘법으로 저 왕 덩치 홍두표를 순한 양으로, 건강한 양으로 만들어 집에 보내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원장은 벌써부터 말문이 턱턱 막혀가고 있었다. 성경 말씀도, 불경 말씀도, 공자님 말씀도 이 마당에서는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죽을 만큼 아프다는데, 말로 치료할 생각을 하다니, 말로 때우겠다는 방법은 첫 단추가 잘못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돈 이야기다. 돈보다 귀한 목숨을 걸고 왔다는 사람에게 좋은 말로 해서 돌려보낸다? 그런 생각은 바보 같을 뿐 아니라, 원장이 치과의사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만 가졌다 할지라도 용서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그것은 치료가 아닌 사기에 불과한 것이다. 원장은 혼란스러웠다. 왜 지난 한 주간 이런 경우를 왜 대비하지 못했단 말이냐.
- 마음이 양순하시고 겸손하신 예수여 우리마음을 주의 마음과 같게 하소서 -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功課)라는 옛날 식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예수성심도문(聖心悼文) 마지막에 나오는 기도 한 소절이 마치 숨 쉬듯 저절로 터져 나왔다. 원장은 태생 가톨릭 신자로 이 경문을 대인 관계 앞서, 종종 올리곤 했는데, 이 날은 원장의 의도와 별도로 한숨처럼 절로 터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놀랐다.-- “그렇다 의탁이다. 나의 능력으로 해결 되 않는다면, 이럴 때일수록 그분께 의탁하여야 한다.”-- 원장은 참 지혜와 평화를 주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마음속으로 그 기도 경문을 연속 암송하였다.
원장은 치료중인 환자의 보철용 인상을 체득(속칭: 뽄을 뜨는 일)하면서 인상재료가 굳는 5분 정도의 자투리 시간에 원장실에 모셔져 있는 예수성심상(聖心 : 17세기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에게 나타나신 예수/사랑의 불길을 뿜는 심장이 가시관에 둘러싸인 모습을 보이시는 예수성상)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한심하고, 초라하고, 공포에 떠는, 사랑이 결핍한 마음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모두 보여 드렸다.
성심공경과 사랑은 예수님 사랑을 따라 배우는 가톨릭 고유의 영성수련의 하나다. 원장은 대인관계가 잘 풀리기 어려울 때와 희로애락 오욕칠정(喜怒哀樂 五慾七情)에 휩 쌓일 때마다 성심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 드리는 일종의 자가 고백성사를 생활화 해 왔었다. 그 때의 핵심기도가 바로 - “마음이 양순하시고 겸손하신 예수여 우리마음을 주의 마음과 같게 하소서” -라는 화살기도 경문이다.
기도 중 성심상 옆 책장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눈앞에 보이는 “임상약리학 신만련 지음”, 본과 2년 때 약리학 강의를 해주신 신만련 교수의 교과서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책 을 보는 순간, 그 안에 반드시 답이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은 예수 성심께 대한 원장의 신앙이다. 그렇다. 환자에게는 좋은 말보다 좋은 약으로 문제가 해결 될 것이다.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보다, 아픈 사람에게는 약이 필요하다. --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그를 진정시킬 신경안정제 -- 이것은 성심께서 도와주신 답이다. 원장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용기백배하는 지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정신과 약물을 찾아 책장을 뒤척이면서, 혹시 홍두표는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두표가 만약 정신과 환자라면, 망상증에 시달리면서, 매번 어려운 전화를 한 것일 게다. 죽을 만큼 어려운 전화를 했을 뿐 아니라. 버스 정류장에 누워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에게는 죽음이 그늘져오는 사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처럼 불쌍한 사람을 원장은 경계하고 미워했던 것이란 말이냐. 망상증이 심하면 자살로도 이르지 않는가. 그 순간 일주일간 불쌍한 망상 환자를 경솔하고 무식하게 미워한 원장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가 정신과 환자였다면, 원장은 단지 자기 방어적 이기심 때문에 환자를 학대한 것이다. 악마의 마음을 갖고 천사의 말로써 일주일간 전화 장난을 한 것이라면 원장은 성심상 앞에 설 자격도 없다. 성심에 시선을 돌린 순간 원장은 자신이 악마와 천사를 오가며 성심사랑을 짓밟는 성심의 가시관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랑이 매 말라 있었다. 섬심께서는 크신 그사랑으로 저토록 가시관을 심장에 두르시고 원장을 사랑 하셨는데, 원장은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배은(背恩)을 해온 것이라, 스스로 얼마나 큰 악행에 빠졌었나, 아프게, 아프게 통회했다. 그리고 그것은 원장의 마음 속에 마주대고 다투어 온 악마와 천사의 공동고백 성사이었다.
임상약리학 책에서 향정신성 약물 항목을 찾고 그 단락에서 강력한 합성 진정제.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을 찾아냈다. -클로르프로마진은 1950년대에 정신병원에 도입되어 의학계와 사회에 큰 도움을 준 약이다. 다루기 힘들고 초조해 하던 심한 망상에 빠진 많은 환자들이 온순해지고 이성적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약효가 있다. 클로르프로마진의 치료효과가 유지되는 한, 환자는 병원 밖에서 생활할 수 있어 이 약이 발명된 뒤, 정신과 입원환자가 줄어들었다는 약이다. 습관성 또는 중독성이 있는 것이 향정신성 약물이기에 장기적인 투약만 아니라면 이약은 이 경우 명약이다.- 원장은 같은 건물에 있는 학림약국에 전화를 걸었다. 과연 찾는 약이 바로 있을까? 있단다! 원장은 3일분 클로르프로마진을 부탁했고, 박간호사는 약국엘 다녀왔다.
- 홍두표 님 들어오세요.-
거대한 몸집이 치료대를 덮듯 꽉 찬다. 원장은 매우 세심하게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진찰을 했다. 환자 홍두표에게 까닭 없는 불신감을 주어 고통 받게 해서는 아니 되겠기에 원장은 최대의 신뢰회복을 위해 남다른 진지한 진료태도를 보였다. 워낙 건강체인 까닭에 발치와(拔齒窩)는 잘 아물어, 일주일 만인데 자국이 한 달 아문 것만큼 깨끗했다. 세척 건조 약물 도포 등 불필요하지만, 환자의 믿음을 얻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 상처는 훌륭하게 잘 아무셨습니다. 남달리 강건하시니 당연하시지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홍두표 표정은 무척 분하고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말을 내려고 하는데 매우 흥분한 상기된 얼굴이다.
- 잠시만 참으시고 나머지 말씀을 들으세요. 아파서 왔는데 안 아플 것이라니, 강건하다니 그 무슨 소리냐 하실 겁니다. --
원장은 설명을 계속 하였다
- 그러나 우리 몸이 아플 때는 한 곳 때문에 전신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전쟁은 38선에서 났는데 부산의 물가가 오르는 형국이지요. - 따라서 발치 후 후유증이 치아에 없었다면 전신적 원인이 있는 지 살펴야 합니다. 보통 치과질환은 국소원인과 전신원인으로 나누어 진찰합니다. 그러니 홍 선생님의 이를 빼신 후 전신적으로 아프신 경과와 증상을 자세히 말씀해보세요.
- 진땀이 많이 나고, 숨이 턱턱 막혀 질식할 것 같고, 손발이 떨리는 것이 가장 흔하고. 또 오늘은 특히 메스껍고 어지러우며 내가 나 같지 않아 이러다 미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밤 낮 이러다 정도가 점점 심해지면, 산소호흡이라도 해야지, 해서 죽을 것 같은데도 이렇게 살아보자고 나왔습니다.-
말을 마치는데 홍두표는 눈물이 글썽인다. "아하-그랬었구나―" 원장은 홍두표 환자가 공황장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공황장애는 공황발작을 일으키는데,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며 어지럽고, 손발이 저리거나 몸이 떨리는 등의 신체적 증상과 함께 공포, 불안, 두려움 등의 심리적인 증상을 동반한다. 심한 경우 이러한 증상으로 곧 죽거나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좀 전 예수성심 상 앞에서 고백 때, “홍두표는 치과 환자이기 전에 정신과 환자다”는 영감이 사실임이 들어나는 순간이다. 지난주간 내내 전화에서 단편적이지만 증상을 말했을 터인데 왜 환자 말을 그때는 흘려듣고 이제 와서 제대로 알아듣는가. 원장은 의료사고 공포로 철저하게 자기방어 벽을 쌓고, 상대의 공격에 대비한 색안경을 끼고 홍두표 환자를 바라보았었다. 그러니 홍두표 환자가 무슨 말을 해도 선전포고 대포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성삼상 앞에서 원장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악마와 천사는 모두 나와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악마와 천사의 공동고백 성사"를 했다. 그리고 나니 방어벽이 무너지고 색안경을 벗으면서 원장은 홍두표 환자 앞에 다시 치료 의사로 서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평정심을 잃고 오해로 배신감으로 선한 인연을 악연으로 바꾸고 있는가. 홍두표 환자를 스토커로 바라본 지난주간의 원장 마음은 밖으로는 적개심이 안으로는 피해의식이 발동하는 의료사고시 당연히 발동하는 의사들의 불행한 마음이었다. 십수년 전에는 환자의 문책 전화에 시달리던 수원의 모 여의사의 자살 사건도 있었다. 그때도 원장은 스토커성 환자를 잘못 만난 억울한 의사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원장은 객관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스토커성 행동도 항상 평정심으로 수용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소가 닭을 보듯 한 평정심으로 사람을 맞아야 하는데, 늑대가 닭을 보듯 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평정심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하면서 얼마나 평정심을 유지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사를 늑대가 닭을 보듯 살고 있다. 나랏님은 국익우선이요 기업은 무한 경쟁이요 개인은 초전박살을 외치며, 아침저녁으로 차를 타고 달리고 달리는 모습들이 늑대가 닭을 찾아 잡아먹으려 달리는 모습이다.
원장은 지난 한 주간의 늑대가 닭을 보듯 한 못된 자신의 모습을 뼈아프게 성찰하면서, 그러나 지금 이 마당을 어떻게 수습하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이를 잘못 빼서 아프다고 믿는 사람에게 “당신 말을 잘들어 보니 당신은 치과 때문에 아픈 게 아닙니다. 당신은 정신과 환자라서 이러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받는 겁니다. 그러니 정신과에 가보시오” 라고 조언한다면 과연 “예 감사합니다.” 하고 정신과로 가겠는가.
어떻게 홍두표 환자에게 클로르프로마진을 먹게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에게 정신과 치료약을 먹이는데 대단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정말 미친 사람은 절대로 자신은 미친 사람이 먹는 약을 먹을 수 없다고 거부한다고 한다. 그러니 홍두표 환자에게 정신과약을 먹으라고 한다면, “뭐라고, 당신이 사고쳐서 나를 이렇게 망쳐놓고 이제는 나를 미친놈으로 몰고 가는거야?”하며 노발대발 할 것이 자명하다.
홍두표 환자는 발치 직후 공황장애가 발작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모든 고통이 발치후유증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공황장애 치료약을 발치 치료약으로 위약화(僞藥化) 해야 한다. 약효는 15분지나면 나타나기 시작해 1시간이 지나면 최고점에 이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 약의 혈중농도는 보통은 8시간 지속 된다. 원장이 권하는 클로르프로마진이 얼마나 위대한 보약인지 확신이 들도록 환자에게 선의의 거짓을 고하여야 클로르프로마진이 적절한 위약(僞藥)이 된다.
- 홍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지난 한 주간 홍선생님 전화내용을 종합한 것과 다름이 없네요. 선생님 체질로 보아 발치한 치아 상처의 신체부담은 보통 평균인들의 가시하나 박힌 것에 불과한 상처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현재 상태는 서양의학 쪽으로는 잘 분석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널리 알려진 의학용어 Alternative Medicine이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대체의학이라고 표기하지요 서양의학 쪽으로는 잘 분석 분석되지 않을 때 한방의학을 서양의사들이 도입하면서 생긴 말입니다. 그 대체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선생님은 원기가 너무 강하여, 발치 시 기가 급하게 흐르다 기가 막힌 것이 아닌가, 아니면 기가 끊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자는 기막힌 것이요 후자는 기절이지요. 동양철학의 근본인 도가사상(道家思想)에서는 기(氣)가 생명의 원천이라고 가르칩니다. 기가 잘 돌면 기가 골고루 분포한 것이지요 그래서 기(氣)의 분(分)포 즉 기분(氣分)이 좋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기가 위로 뻗치면 상기(上氣)라고 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 반대로 기가 내려가 하기(下氣)가 되면 어지럽고 메스껍기도 합니다.-
-제가 바로 하기(下氣)네요. 그 어지럼증에 메스거운 기분으로 당췌 뭘 먹을 수가 없습디다 그러니 더 죽을 지경이지요-
아니 이건 절묘한 맞춤 아닌가! 클로르프로마진의 부작용(副作用) 항멀미 효과가 있다. 원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 이렇게 기는 우리 몸을 오르내리며 생명력을 좌우합니다. 지난주 이를 빼다가 기(氣)가 어디서 막힌 듯합니다. 기가 막히면 흐르던 기가 끊어집니다. 한자로 끊어질 절(絶)자를 넣어 기절(氣絶)이라 하지요 바로 때때로 기절이 되시니 죽음을 맞는 듯하신 겁니다.-
홍두표 환자는은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하면서 연신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고, 원장은 청산유수 같은 자신의 거짓말에 얼굴이 붉어질 지경인데, 말을 하다 보니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논리적인 말이 준비되었을까?
-그래서--원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 지난 한 주간 전화 내용도 검토해보니 대체의학 관점으로 적절한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신약이 있어서 제가 준비해 놓았습니다.
- 이 약은 3일 분인데 기의 흐름이 완전히 회복되면 더 드시면 안됩니다. 그러나 3일은 꼭 드셔야 합니다.--지금 당장 1회분 2알을 드시고, 대기실에서 30분 정도 기다려 보세요 기가 돌아 원기가 회복되시면 안심하시고 집에 가셔도 됩니다. -
원장은 난데없는 서양의학 대체의학 도가철학 강좌를 한바탕하고 정신과 약을 먹였다. 그러나 원장은 엉터리 종합의학 강의로 정신과 약을 치과환자에게 먹게 한, 희한한 치과 치료가 비도덕적인 속임수가 아닌 정당한 치료라고 자문자답을 몇 번씩 한 것은, 자신의 기막힌 거짓말이 비도덕적일 것 같은 결벽 때문이었다. “그렇지 이 모든 일 성심(聖心)을 통한 노력이라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자위하였다.
- 다음 분 들어오세요.
잔뜩 겁먹은 일곱 살배기와 엄격한 얼굴의 뚱뚱보 엄마가 들어선다. 소아치과 환자는 정말 스트레스 많은 환자지만, 원장은 오늘 큰 해일을 하나 넘긴 직후 같아 어느 골치 아픈 환자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점심을 걸렀어도 홍두표 환자를 투약까지 성공하고 나니 그야말로 온몸에 생기가 돌면서 평화를 되찾았다. 보통 약은 흡수되고 약리작용을 발동하는 시간이 약을 복용한지 15분부터다. 30분이 지나면 제대로 약효가 나타나서 약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8시간을 약효가 지속된다.
홍두표 환자는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메슥메슥하여 속이 울렁거린다는 욕지기 증상은 다행히도 클로르프로마진 부작용(副作用)의 하나인 진토(鎭吐:멀미 진정)효과로 15분이 지나면 욕지기가 없어지고, 정작용(正作用)으로 마음도 너그럽고 평온해질 것이다. 그야말로 기가 골고루 퍼지는 기분(氣分)이 좋아지는 것이니 기가 잘 도는 것으로 믿을 것이다. 이어서 피해망상을 벗어나 대범하고 활력이 넘치는 항우울 효과가 30분 지나면 나타날 것이다.
-마음이 양순하시고 겸손하신 예수여 우리 마음을 주의 마음과 같게 하소서-
하나의 화살기도가 원장의 마음에서 날라나와 큐피드의 화살처럼 그 기도는 예수 성심을 통하여 홍두표 환자에게로, 또 그의 아팟던 마음도 화살처럼, 다시 원장의 마음에 꽂힐 것이다. 이렇게 하나가 되는 것이 이웃 사랑의 조건이다. 십자가 에 죽으시기 하루전 최후의 만찬후 게세마니 동산의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기도다.
- 아버지 제가 아버지와 하나이듯이, 저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변화인가. 공자께 자로가 여쭙기를 “스승이시여 원수까지 사랑 하리이까?” 하니 공자께서 잠시 생각하시더니, “원수를 사랑하기는 지극히 어렵나니, 원수는 바르게 대하여라.” 하셨다, 한편 예수께서는 “원수를 내 몸만큼 사랑하라.”하셨다. 내 몸보다 더 사랑하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두분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공자님의 경우는 원수와 내가 둘로 나뉘어져 있을 경우를 가르치신 것이다. 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원수와 내가 한 몸이 되었을 경우를 가르치심이다. 그래서 내 몸처럼 내 몸만큼 사랑하라 이르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까닭으로 예수님은 하나가 되라고 가르치셨고, 기도 하셨다. 불가능한 원수사랑, 늑대가 닭을 바라보듯한 복수심으로 원수를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바르게 편견없이 대해주는 것만 해도 지극히 도덕적이다. 그러나 원수아 내가 하나가 된다면 기막힌 변화가 일어난다.
그 예를 남북한 관계로 예를 들어 보자. 남북이 대치한 현재, 북한을 원조하면 민초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소위“퍼주기 정책”이라는 원망 섞인 불평여론이 비등한다. 그러나 남북이 통일되어 고려민국으로 새 출발한다면, 북한 땅에 발전소 철도 고속도로 등 시설을 해주는 것을 퍼준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당연한 국토개발이다. 이렇게 사랑은 하나가 되어야 완성된다. 진정한 이해도 하나가 되는 것이며, 하나가 되면 어떤 오해도 의혹도 공격 방어도 없이 모두 수용 이해한다. 그리고 하나가 되면 너와 나는 소가 닭을 바라보는 평정심을 갖는다. 그러나 둘로 나뉘면 제아무리 참으려 해도 늑대가 닭을 보듯한 마음으로 변한다.
반야심경은 그 제목까지 270자로 되어 있으며, 부처님의 핵심 설법이다 그 270자를 한 글자로 요약하면 “멸(滅)”이다. 양순하심과 겸손하심의 표상인 예수 성심은 바로 “멸(滅)”이시다. 지극히 겸손하기를 이 어린이와 같이 하라 하신 말씀은 마음을 비우고 비워 없애라는 말씀이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비워지면 잔잔한 물결마저 사라져 명경지수(明鏡止水 거울처럼 맑은 물)가 되리니, 명경지수에는 하늘과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치어 문득 그안의 풍경으로 우주를 볼 수 있는 깨달음으로 자연히 부처에 이른다 하셨다. 가톨릭에서는 영성수련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좌선(面壁坐禪)이라 하는 마음수련은 이렇게 자신을 없애서 이웃과 중생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다. 마음을 비워 내가 사라져 이웃과 환자와 하나가 되면 클로르프로마진 효과를 약 먹지 않고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참사랑이다. 클로르프로마진은 홍두표의 마음을 닭을 보는 소의 마음으로 바꾸고 있었다. 두 명의 환자 치료를 더 마치고 원장은 홍두표 환자를 다시 대면했다.
- 어떻세요, 기 운행이 제대로 되어 기가 골고루 막힌 데 없이 온몸에 퍼져 기분이 좋아지시면 약효가 있는 겁니다.-
홍두표는 대답대신 고개를 댓 번 갸웃 거렸다.
- 조금 더 경과를 기다려 보실까요?
- 글쎄올시다. 메슥메슥한 기운은 없어졌네요―
- 숨이 꽉꽉 막히시던 것은 어떻습니까?
- 음 그것도 아까 하고 다르네요.
- 그러면 약효가 제대로 먹히는 듯합니다. 일단 원기만 잡히시며 워낙 장골이시니까--, 자신감을 가지세요. 제가 보기엔 호랑이도 단 매에 잡으실 장사이신 데요-
홍두표 환자는 그래도 연신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래도 얼굴은 아까 하고 전혀 다르게 화색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몸집을 대합실 소파에서 일으켰다.
- 그러면 이상 있는 데로 다시 전화하리다.―
- 당연하시지요. 그리고 꼭 아까 드린 약 3일분 꼬박 드셔야 합니다.-
홍두표 환자는 그 이후 전화가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 그대로 여름휴가까지 다녀오니 한여름이 지나면서 원장은 평정의 일상을 되찾았다. 어려운 때는 잠시 흐려진 날씨와도 같은 것이다. 절망과 낙담이라는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변함없이 비치고 있는 법이다. 추석을 맞이할 즈음에 홍두표 환자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 안녕하세요. 원장님
- 아- 오랜만이시네요 그래 그 뒤 건강은 어떠셨나요?
- 네, 원장님 주신 그 약, 기를 살린다는 그 약이 저를 살렸습니다. 3일치 약을 다 먹으니 증상이 씻은 듯 없어지더군요. 원장님 말씀대로 이를 빼면서 놀라, 기가 막히거나 끊어진 까닭 때문인 듯 했습니다. 덩치만 컸지 물컹했나봅니다. 약 다 먹고 한 주간쯤 지나 원기가 다 회복되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려고, 강남 성모병원에 정밀 진찰을 받았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다는 군요. 그리고 그곳 의사 선생님들은 기가 막히고 끊어지고 움직이고 분포하는 제 신체상의 특징을 잘 설명해주어도, 그저 웃기만 하여서 믿음이 아니 가더라고요. 그래서 말씀인데 반대쪽 사랑니도 빼 주십사, 부탁드리려 나왔습니다.-
원장은 그 순간 다소 당황했다.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다시 갈등하는지, “발치를 해주면 지난번처럼 또한번 난리가 나면 어쩔 것이냐, 제발 좋은 말로 설득해 종합병원에 의뢰시켜라.” 하는 계산이 빠르게 뇌리를 스친다. 그러나 그것은 원장을 믿고 다시 찾아 온 홍두표 환자에 대한 일종의 배신행위라고 마음속의 천사는 호소하고 있다. 그렇게 힘든 지난 여름의 시련을 극복한 것은 적대적 색안경을 벗게 한 원장 마음속의 “천사와 악마의 공동 고백” 때문이라고 원장은 믿어 왔다. 따라서, 원장이 다시 색안경을 쓰고 자신을 믿고 찾아온 홍두표 환자를 경계한다면 예수성심(聖心)께 대한 모독일 수 있다.
- 홍 선생님 발치 해드리겠는데요, 약속을 하나 해주세요. 절대 긴장하지 마세요. 긴장하시면, 요 전처럼 기가 끊어지거나 막혀 기분(氣分)이 나빠지거나 기가 끊어지는 기절(氣絶)이 일어나면 또 고생이거든요. -
원장은 공황장애가 문제로 지적되지 않은 종합검진이 공황장애라는 부분을 잘못 지나쳐 버렸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공황장애 발작을 막기 위한 사전 조율을 철저히 했다.
- --------!!
- 화엄경 말씀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다 마음먹기 달린 것입니다. 그러니 홍 선생님은 누구보다 뛰어난 육체와 체력의 소유자가 아닙니까. “강철을 끊을 수 있는 나”라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런 약속을 하시면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그 사이 한번도 공황장애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종합검진에서도 이상이 없었다는 진술을 받아드린다면 신경안정제를 투약할 이유는 없었다. 원장은 발치를 위하여 항생제 소염제 위벽보호제로 처방된 원장 고유처방만 처방하고 발치를 했다. 120키로의 거구는 골 조직이 매우 치밀하기 마련이다. 골 밀도는 체중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 혹시 지난번처럼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가 먼저 드신 그 약을 다시 준비 할 터이니 전화 주세요.-
홍두표 환자를 보내고 나서 원장은 일기장을 펴고 오늘을 정리 했다. - 천사와 악마가 공동고백을 통하여 색안경을 벗고 벽을 허물어 환자와 하나가 된 정의로운 사랑 체험으로 지난여름을 감사해 왔는데, 오늘 홍두표 환자의 진료 요청에 순간 망설인 것은 공동고백의 아름다운 빛을 바래게 한 새로운 벽, 새로운 색안경이었다.
- 아 부끄럽게 다시 벽을 만들고 색안경을 준비 했었구나.
- 이웃을 소가 닭 보듯 하는 평정지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 인가.
사람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늑대가 닭을 찾듯 걱정거리를 찾는다. 그리고 걱정거리는 자신을 피해로부터 지키기 위한 필요악이라 믿는다. 그러나 걱정거리가 커지면 각종 망상으로 발전하기도하여 자신의 삶을 지옥처럼 만든다. 소위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이런 일이 더 심하다. 미래 일어날 일을 여러 가지 변수를 넣어 상상하면서 그중 자신에게 불리한 요소만 확대 상상 하니 걱정이 잘 날이 없이 피해망상으로 발전해 나가난다.
피해망상, 과대망상 등 여러 망상은 완벽주의적 자아를 추구하는 자들의 불행이다 이런 불행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완벽한 나를 남과 구분하여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벽이다. 그런데 원장 자신도 그 벽속의 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벽이 두껍고 높을수록 외부와는 더욱 적대적 관계로 살게 되기 때문에 각종 정신의학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 번뇌와 고통이 자심하여, 때때로 이들 완벽주의자, 천재들은 고통에서 헤어나기 위해 자살까지 선택한다.
- 부처님의 가르침 멸제 (滅諦, Nirodha Satya) 는 이런 벽을 없애고 색안경을 없애고 완벽주의에 눈먼 자아마저 없애는 것을 이르심일 것이다. .-- 원장은 일기장을 덮고 성심상을 바라보며 예의 그 화살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 이보시게 원장 뭔 걱정거리라도 있나? 표정이 심각하셔!
퇴근시간 맞춰 벗을 찾는 원장의 고교시절 짝꿍 이대사가 원장실을 들어서며 원장의 생각을 끊어준다.
- 걱정? 하늘의 구름조각 같이 많지 그게 모이면 천둥벼락이라 지랄이지--
- 천고마비 호시절에 웬 벼락인가 애국가 4절이 “가을 하늘 공활한데-”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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