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을 달리는 기차
온 세상을 황금과 붉은 색으로 물들이며 가을 단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난 바람결에 스며드는 가을 빛이 막 나무잎에 찾아와 푸르름이 화려한 단풍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
뉴욕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어지는 앰트랙 79번을 타기위해 알랙산드리아 기차역에 서 있었다.
30분이나 늦장을 부리고도 무슨 벼슬이라도 한양 기차는 '뿌우웅' 기적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역으로 들어온다.
친절한 승무원들의 안내로 기차에 올랐다. 차창 쪽으로 자리를 정하고 앉자 79번 기차는 역사를 천천히 벗어나며 남쪽으로 달려간다.
장장 8시간 넘게 걸린다는 목적지 Kannapolis 역까지는 열여섯번째 정거장이라니 느긋하게 책 두권과 먹거리는 충분했고,
덜커덩 거리는 기차 안은 좌석이 텅텅 비어 호젓하니 가을 하늘같은 자유함속에 혼자 하는 기차여행도 별난 맛이 있어 좋기만 하다. 힘차게 달려가는 열차에 발맞추듯 가을이 따라오고 있었다.
차창밖으로 푸르른 광야가 신선한 충동감을 안겨주며 황금빛으로 누렇게 변한 들판은 가을햇살을 받아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간이역마다 타고내리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얼굴 표정들이 있어서 정답고 호기심이 간다. 청춘은 청춘들대로 나이든 이는 나이든 대로 시간의 흐름을 음미하기에 적격인 계절이다. 청춘은 사랑을 이어갈 것이고
중년의 가을은 추구할 것과 정리할 것을 다듬는 계절이기도 하고, 노년의 가을은 흩어지는 낙엽에 민감하게 받아들이 수 있으나 반면에 지나온 생을 반추하기에 알맞는 계절의 기차여행이 아닌가, 지리함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보슬비가 내리는 어둠이 깔린 밤이다. 마중 나온 딸과 만나는 플랫홈의 포옹은 낭만에 흠뻑 젖는 기쁨을 더해준다.
드높은 가을 하늘과 더불어 점점 곱게 단풍이 물들던 날 열흘간의 휴가를 보내고 작은 딸네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에 올랐다.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손 흔들며 서있는 딸 가족의 밝은 미소를 보며 진정한 삶의 기쁨과 끈끈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난 바보같이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소풍가는 아이에게 준비하듯 정성껏 담아준 딸의 점심을 꺼내먹으면서도 난 왜 이리도
마음이 아릴까. 가까워도 멀어도 가슴 아리게하는 이별을 대신하듯 기적소리는 여운을 길게 남기며 무심히 떠나간다.
이제 얼마동안은 철길을 구르는 바퀴소리가 귓전을 맴돌 것이며 가득히 몸속에 앤돌핀을 채우는 풍성함과 결실의 계절속에 노년으로 가는 길목마다 마음의 무늬가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으로 남고 싶다.
글 : 유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