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갑시다’
알게 모르게 나를 괴롭히던 직장동료 K가 그날따라 퇴근길에 따라나섰다.
버스 타러 가는 길이야 한 방향인데 같이 가고 자시고 할 것 없지 않느냐며 나는 휑하니 앞서 걸었다.
60년대 후반의 어느 여름이었다. 혜화동 로타리에 있는 빵집에는 소문난 팥 아이스케키가 있었다.
그걸 사주겠다고 따라오더니 그는 이화동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더니 종로5가에 다다르기 전에 ‘차나 한 잔 하지’ 하면서 한 찻집으로 쑥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이스케키 대신 커피 한 잔으로 때울 심산이구나 싶어 좀 못마땅했지만 따라 들어갔다.
차를 시키고 둘러보니 찻집 한 쪽에 서있는 하얀 석고상 하나가 눈에 띠었다.
와락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데생을 하던 쥴리앙이었다.
그 당시 미술선생이신 C선생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단발머리 시절의 추억을 더듬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그 C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C선생님이라고 아나?’
‘아니 그 선생님을 어떻게 아세요? 나 지금 그 선생님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치 독심술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겨져 굉장히 놀랐다.
서먹하고 못마땅하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나는 그에게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모디리아니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알게 해주었고 데생의 기본을 익히게 해준
잊지 못할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선생님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무장해제가 되었다.
그것은 그의 기름쥐 같이 포마드를 바른 머리 때문에 불리게 된 ‘이발사’라는 별명에도
‘아, 세빌리아의 이발사?’ 라고 가볍게 넘기던 모습을 보게 된 순간과 더불어
내 마음을 담박에 훔쳐간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