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단말기 하나 사용할 줄 몰라 쩔쩔 매는 그 여자가 식당을 한다.
식당 이름은 '몽마르뜨 언덕 위'다.
처음에 그 식당 자리는 작은 구멍가게에 불과했다. '00슈퍼'라고는 했지만
정말 작은 가게였다. 과일이나 야채도 팔고 아이스크림, 과자류, 약간의 생필품 등속을
취급하는 아주 작은 동네 구멍가게였다.
그 가게를 오래 지키던 솔이아빠가 어느날부터 무슨 두꺼운 책을 열심히 보느라고
장사도 좀 소홀하다 싶더니 부동산 중개사 자격을 따서 떠나버렸다.
가까이 이렇다 할 가게가 없다 보니 라면이나 두부 콩나물 같은 것은
아쉬운대로 그 가게에서 살 수 있어 그런대로 동네사람들에게는 요긴한 곳이었다.
그 가게를 인수한 여자가 정오씨였다. 작은 키에 큰 눈은 겁이 많아 보였고
사람만 좋아보였지 도무지가 어수룩해서 장사묶이는 아닌 듯 싶었다.
잡다하고 지저분하던 가게를 어느 날 말끔하게 정리하더니 돈을 들여 싱크대도 만들고
진열대도 가지런하고 이쁘게 다시 해서 구멍가게 치고는 깔끔해 보였다.
사무실 바로 앞에 그런 가게가 있는 것은 참 편리한 일이었다.
뭐든지 급하면 달려가곤 하다가 그 여자와 친해졌다.
알고보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그룹전을 연다고 팜프렛을 주었다.
수상경력도 꽤 많은 화가였다.
가게를 하게 된 이유가 걸작이었다. 같이 어울리는 주부들이 모두 한가지씩 일을
갖고 있어서 부러워 하던 차에 마침 소개하는 사람이 있기에 얼른 맡았다는 것이다.
아니, 일도 일 나름이지 하필이면 이렇게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붙들려 있어야 하는
일을 선택하다니 참 어이없다고 했더니 그냥 웃기만 했다.
안면이 좀 생긴 손님들에게는 물건값을 혹 더 받은 건 아닌지 하루종일 노심초사했다.
손님 눈치를 봐가며 자꾸 물건값을 내려 부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 말처럼 내게 말했다.
'나, 이거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밤 늦게 야채시장에 가는 일도 힘들고...
여기서 뭐 다른 것 할 것 없을까요?'
'이렇게 좁은 곳에서 뭘 할까요? 테이크 아웃 커피점? 그것도 그렇고 잔치국수나
팔면 모를까'
나도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했다.
며칠 후 그 슈퍼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정말로 음식점을 차릴 모양이었다.
그렇게 빨리 뒤집어 엎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그 용단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완성된 집을 보니 너무 예뻤다. 하얀 격자유리창을 달고 내부는 깨끗한 아이보리색
타일을 붙여 좁지만 정갈한 홀 구석구석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장식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여기저기 걸기도 하고 세워놓기도 했는데 그림들이
따뜻하고 섬세해서 마음에 쏙 들어왔다.
해바라기를 비롯한 꽃과 정물, 그리고 풍경들이었는데 음식이 나오는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즐거워졌다.
처음 식당을 할 때 그 여자는 몇 번씩 힘들어 못하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말이 그렇지 식당 일이 가게 일보다 쉬운 건 아니었다. 주방에 사람 쓰는 일부터
입맛이 제각각인 손님들 투정까지. 게다가 장소가 협소해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정신을 못 차리고 허둥거렸다.
기다리는 일에 짜증을 내면서도 손님들이 꾸준히 드는 것은 그 집의 청결함과
주인의 친절함, 그리고 조미료를 그다지 쓰지 않는 담백한 맛 때문이기도 했다.
주방집기들도 고급스럽고 예쁜 것만 골라 쓰고 하다못해 냎킨도 여늬 식당 것과
달랐다. 식재료도 나쁜 것은 쓰지 않았고 비싸도 한우고기를 고집했다.
그럭저럭 잔치국수로 시작한 식당은 메뉴도 다양해졌고 이제는 힘들다는 노래도
슬며시 사라졌다.
가게를 빙 두른 하얀 격자창에는 또 깨끗한 흰 색의 레이스 커텐이 인형의 집처럼
예쁘게 드리워져 있다.
진한 초록색 차양에 쓰인 '몽마르뜨르 언덕 위'라는 상호를 보고 처음엔 많이 웃었다.
언덕이면 언덕이지 위는 왜 붙였을까.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소매달린 에프론을 입고 손님이 맛없다고 할까봐 몇 번이고
다가와 물어보는 정오씨는 목요일마다 화실엘 가는 눈치다.
그림도 가끔 바뀐다. 나는 어떤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보다 그 여자의 그림이 좋다.
겨울에 걸려있던 산자락 마을의 설경이라든가. 고개를 떨군 한 송이 해바라기,
그리고 엉겅퀴 꽃송이의 솜털, 강화섬 어느 마을의 봄풍경...
식당에 걸린 그림들은 점심시간의 분주함 속에서도 제법 분위기를 그윽하게 해주었다.
정오씨는 오늘도 카드 단말기를 잘못 긁어 바쁜 소란 속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
계산속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야무지지 못해도 정오씨는 그림그리는 여자다.
지나치게 친절할 때도 있고 자꾸만 음식을 더 주거나 맛없어 하는 눈치만 보이면
다른 음식을 기어이 놓고 가는 정오씨를 어떤 사람들은 좀 푼수없어 보인다고
싫어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보는 일이 재미있다. 그녀의 그림을 보는 일도 즐겁다.
한 끼 먹는 건 대강 해치우지만 몽마르뜨 언덕 위에 가서 그림도 보고 하얀 레이스
커텐 너머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오는 일은 이제 점심식사 시간의 즐거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