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나와 토크쇼를 하는데 나름대로의 특별한 경험을 다투어 전했다.
러시아 미녀가 자기네 나라 인사말이 한국의 어떤 욕설과 비슷해서 알려주려면 민망하다고 했다.
2018년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나.
발음의 요상함 때문에 입에 올리기가 좀 거시기했던 그 2018년에 우리 합창단은 모험을 감행했다.
전년도 용산OB합창단의 창단공연에 찬조출연으로 세 곡을 선보였는데 깜냥에 좀 잘 했던 모양.
연대음대학장을 역임하신 15기 조명자 선배님이 우리에게 도전의식과 숙제를 던져주셨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더 잘 할 수 있다. 내가 도울 테니 해보라는 뜻밖의 제안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끼리 연습하고 1년에 한 번 재학생들의 합창제에 찬조출연만 하다가
영산아트홀이라는 일반무대에 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 무대에서 온전히 우리의 공연을 보여주다니....
꿈인 듯, 아닌 듯,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순간이 지나고 의논이 시작되었다.
생각지도 않아서인지 따져볼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취미활동의 하나로 여기며 그다지 열심을 내지 않던 합창연습에 이제 본격적으로 매달려야 할 판.
시간과 경비도 문제였고 11월 말 경 잡힌 아트홀의 일정에 따르기 위해 남은 연습기간은 고작 7, 8개월 남짓.
게다가 그날 부를 곡은 처음에 열 일곱 여 곡이었다.
무엇보다도 모자란 인원이 문제였다. 오래동안 산악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인적 자원이 풍부한 15기 김경희 선배님을 필두로 여러 회원들이 고기 낚듯 낚아 채 온 선후배들이 점점 모여 연습실이 대만원을 이루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합창단에 입단한 지는 몇 해 안 되었지만 처음 보는 성황이었다.
젊은 25기 후배들이 일꾼이 되어 모든 일을 이끌자 수레바퀴는 신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시적으로 회비도 두 배로 올리고 여기저기 소모임이며 개인적으로도 마음을 아끼지 않고 지원을 해주셨고 총동창회 차원에서도 큰 보탬을 주셨다.
새로운 단복을 하나 더 마련해야 하는 일도 단원들의 의견수렴 끝에 정해졌다.
날짜는 빨리 가고 전곡을 습득도 하지 못했는데 2018년도 여름은 왜 그렇게도 살인적 더위가 그것도 오래 머물던지 금같은 연습시간을 그 더위가 잡아먹고 말았다. 쉬지 않고 연습해도 모자랄 판에 할 수 없이 방학을 해야 했다.
그리고 가을은 또 벼락같이 눈 앞에 와 있었다.
처음에 한 주에 한 번 모이다가 두 번, 나중에는 한 주에 세 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미 약속된 단원 개개인의 사적인 스케줄도 무시할 수 없어 사실 연습은 원활치 못했다.
그런데 혼자 반주에 지휘로 연습을 이끌어 가시던 지휘자 강지선샘, 둘째를 갖게 된 것이다. 이 출산률 저조한 시대에 그런 낭보가 없었지만 우리는 은근 걱정이 되었다. 괜찮으실까?
마음이 지극하면 우주가 돕는다더니 뱃속의 아이는 어머니를 전혀 괴롭히지 않아 입덧도 없는 눈치, 사실 학교 식당에서 점심 먹을 때 보면 고기면 고기, 야채면 야채 얼마나 많이 드시는지 보기만 해도 든든하긴 했다.
공연 막바지에는 일주일에 네 번도 연습했지만 지휘자의 눈으로 , 아니 귀로 들었을 때 많이 부족해 나중에 고백하기를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기도도 정말 많이 하셨다고 한다. 6학년에서 8학년까지 단원들의 실력을 그만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분의 고심도 있었지만 긍정의 힘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할 수 있습니다. 잘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실전에 강하거든요 "
격려를 아끼지 않거니와 도무지가 낙천적인 데다가 참을성 많은 좋은 성품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단복이 도착되었을 때 입어보며 즐거워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세월을 역주행하여 여고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소녀같기만 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그런데 아침부터 퍼붓는 눈, 이게 瑞雪인지 뭔지 모르지만 나름 머리를 곱게 하고 나섰다가 눈보라에 그만 폭망이 되고 말다니.
엽렵한 후배들이 챙겨온 헤어 드라이, 화장품 보따리가 아니었으면 회복불능이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무대에서 연습을 잠깐 한 다음 마침내 실전에 들어갔다. 악보를 들긴 했지만 지휘자를 봐야 했기에 전곡을 외우다시피 했건만 잊어버릴까봐 전전긍긍.
하필이면 앞줄에 선 입장은 더 압박감이 심했다. 날씨가 안 좋아서였을까 생각보다 관객석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그 수많은 눈동자가 우리만 보고 있다 생각하니 마시고 나온 우황청심원이 아무 소용 없는 것 같았다.
단복을 갈아입고 2부 순서가 시작되었는데 왜 그렇게 덥고 몸이 무거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있는 힘, 없는 힘을 다해 딴에는 떨지 않으려 애쓰며 최선을 다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대기실에 와서 옷을 벗으려다 보니 아뿔싸, 1부 순서에 입었던 드레스스커트를 입은 채 2부 드레스를 입고 나간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휴우~~ 어쩐지....
로비에서 기다리던 많은 가족 선후배들이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얼떨떨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백합동문합창단의 일원이 된 덕분에 난생처음 큰 무대에 서봤지만 개인적으로는 후유증이 오래 갔다.
그 무덥던 8월에 심한 기관지염으로 오래 고생을 해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무리를 많이 한데다 기력이 쇠진해 버려 좀처럼 체력회복이 되지 않아 후기를 올리지 못했다. 그 점 죄송한 마음에 이제 회상 형식으로나마 후기를 올린다.
그러다 보니 연습때마다 몸에 좋은 차를 커다란 보온병에 몇 개나 담아 와 돌리던 후배님들 이름도 다 기억나지 않고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분들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어 정말 죄송하다.
중심을 잡아주신 단장님과 경희 선배님도, 복잡한 회계일로 애쓴 승희씨, 큰 프로젝트의 총괄을 맡아 힘들었음에도 열심히 감당해준 우리의 총무 혜숙씨, 장구잡이 현숙씨....
생각나는대로 불러봅니다만 그밖에도 많은 동문들의 도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불가능을 가능케 해 준 조명자선배님은 물론이다.
강지원 지휘자샘은 지난 2월에 옥동자를 무사히 분만하시고 우리는 4월에 다시 모일 것이다. 백합동문합창단의 한 해를 뱃속에서 다 듣고 느꼈을 그 아이가 궁금하다.
모두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꽃피는 4월에 만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