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 겨울나그네
※ 토레 12/23 : 영하의 날씨에 '운현궁'과 광화문 탐방길에 나서다.
계속 이어지는 영하의 찬 날씨 속에 시간이 되니 6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그간 감기로 고생했던 임중자 친구가 3주만에 나오니 얼마나 반가운지 ..
우린 모두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안국역을 빠져 나오니 '사람중심 명품도시 종로' 라는 표어가 인상적이다.
우린 이 길을 따라 걷다보니 '운현궁'에 도착, 1컷 인증샷을 남기고 '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유물 전시관' 등을 돌아본 후 이어 광화문 탐방길에 나섰다.
인사동 길로 들어서 광화문 광장을 지나 '연합뉴스빌딩' 휴식공간에 도착,
자리를 잡고 앉아 영자표 따끈한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잠시 쉼의 시간을 갖고 그 와중에
희자친구는 무겁게 지고 온 팥떡을 돌린다.
우린 다시 이동하여 오늘의 점심은 광화문 연합뉴스빌딩 지하에 위치한 전통 중국요리 전문점
'베이징 코야' 맛집에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맛있게 먹으면서 우린 오늘이 토레의 송년 모임이라 칭하면서..
후식으로 귤, 사과, 흑삼제리로 오늘의 만찬을 즐겼습니다.
이어서 우린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으로 이동, 관람을 하고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향했네요.
집에 도착하니 13,025보 걸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함께한 모든 친구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 운현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대한민국 초대 황제 고종 광무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과 어머니 여흥부대변인 민씨가 기거했던 사가로 흥천왕이 태어 났으며 고종 광무제 또한
태어나고 왕이 되기 전까지 잠저로 지냈던 곳"이라 하네요.
*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 "국립 근현대사 대표 박물관으로서 19세기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승하고 국민들의 자긍심과 염원을 모아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역사문화 공간"이라 합니다.
* 특별히 오늘 맛있는 점심을 제공한 김선자 친구 : 고맙고 감사합니다.
* 오늘 참석한 친구들 : 김선자 김영자 신 선 이희자 임중자 김미자 (6명) ~^^
다음모임 공지 :
- 가는 곳 : 석촌호수
- 만나는 시간 : 2023년 12월 30일 (토) 오전 10시 30분
- 만나는 장소 : 잠실역 (2호선) 2번 출구안에서
글 /김미자
편집 /임중자
**********************************************************************************************************
사진/임중자
운현궁/ 1977년 11월 2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高宗:재위 1863∼1907)이 출생하여 12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潛邸)이다. 철종(哲宗:재위 1849∼1863)의 뒤를 이어 고종이 즉위하자 생부(生父) 이하응(李昰應)은 흥선대원군이 되었고, 생모 민씨는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의 봉작을 받았다. 이곳에서 대원군은 서원철폐, 경복궁 중건, 세제개혁 등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운현궁에서 중국 청(淸)나라 톈진[天津]으로 납치되었다. 흥선대원군의 한옥과 양관(洋館)을 모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 운현궁 [Unhyeongung Palace, Seoul, 서울 雲峴宮]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노안당/운현궁의 밖앗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이 주로 기거하던 곳.
노락당/운현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있으며,운현궁의 안채이다.
고종과 명성왕후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며,대원군의 가족들의 크고 작은 행사가 이루어진 곳.
운현궁 노안당(사랑채)에서 노락당(안채)으로 가는 중문 이다.
운하연지(구름아래 벼루물 을 담아둔 못)/흥선대원군은 글씨를 쓰기 위해 먹을 갈때는 이곳의 물을 떠 오게했다.
이로당/고종 과 명성왕후의 가례가 노락당에서 행해진 이후 더이상 노락당을 흥선대원군 부대부인의 안채로 쓸수
없다하여 흥선대원군과 여흥민씨 부대부인의 안채를 새로지어 이로당 이라 하고 여흥민씨 부대부인은 계속
이로당에서 기거하였다.
이로당 내부
경송비/고종이 어렸을때 소나무 옆에서 많이 놀던 추억을 기려 붙여준 이름
무승대 /운현궁 안에 흥선대원군이 난을 올려놓던 난대입니다.낮에는 대청마루에 밤에는 무승대에 난을 옮겨가며
즐겼다 하네요.
운현궁의 꽃담/조선시대의 색갈이 있는 꽃담은 민가,여염집에서는 할수 없고 궁이나 왕의 잠저등에만 설치할수 있었다 한다.
왕의 색갈인 붉은색으로 여러가지 무늬를 넣거나 글자,그림등을 넣어 수명장수와 악귀를 물리치고 대대손손
장수와복을 누리는 기원의 상징 을 했다 한다.
친영례복식/부대부인의 녹색원삼과 흥선대원군의 적색 조복
친영례복식/명성왕후의 홍색적의와 고종의 현색 면복
척화비
당백전/1866년(고종 3) 11월에 주조되어 6개월여 동안 유통되었던 화폐.
모양과 중량은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의 5·6배에 지나지 않았으나, 상평통보보다 100배의 명목 가치로
통용시키기 위해 주조되었다.당백전 주조의 직접적인 동기는 재정난 타개에 있었으나,
소전(小錢)의 불편을 덜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즉,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는 1매의 가치가 1문(文)이었고, 1문은 단위가 너무 작아 고액 거래 등
유통하는데 많은 불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시일 내 그처럼 다량의 악화가 시중에 나돌게 되자, 화폐 유통 질서가 큰 혼란에 빠져 버렸다.
상평통보를 가진 자는 당백전과의 교환을 기피해 상평통보를 시중에 내놓지 않았다. 또, 시중에서는
상인들이 당백전의 사용을 꺼려 일시적으로 물물교환의 형세가 나타났고, 화폐가치의 하락에 따라
물가는 폭등하였다.
악화 당백전의 대량 주조·유통에 따른 이러한 대혼란은 여론을 비등하게 하였고,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1867년 4월 당백전 주조를 중단하였고, 이듬해 10월 장령(掌令)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를 계기로
유통까지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당백전 [當百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성왕후의 홍색노의
상궁의 청녹색당의
조계사
불교박물관
문수동자상
우리가 먹은 점심/선자씨가 쐈어요.
연합뉴스 앞의 달리는 기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앞에서~
3.1운동때 대한문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포니자동차/포니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이며,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세계에서는 16번째로 고유모델 자동차를 만든 국가가 되었다.
1976년 1월 26일부터 판매가 시작되었으며,에콰도르를 시작으로 해외에도 수출하게 되었다.
역사박물관 5층에서 내려다본 광화문일대
창문에 나타난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김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