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참석하는 가곡교실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일이 있었다.
혼자 부를 깜냥도 못되고 용기도 없는 걸 잘 아는 주위 분들의 권유로
중창을 하게 되었다.
같이 노래할 분의 음색이 나와 어울리건 안 어울리건 나는 당연히 앨토를
부르기로 했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내 소리가 다른 이의 소리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화음을 이룰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음이 잘 되는가 아닌가를 귀기울여 들어보며 내 목소리를 다듬기도 하고
성량을 키웠다 줄였다 하는 나름대로의 기교를 부려보는 맛도 썩 괜찮았다.
중창을 부르는 일은 그런 즐거움이 있어 더욱 좋다. 합창을 좋아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화음의 아름다움에 늘 매료되기 때문이다.
나는 앨토가 좋다. 그것이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 내 목소리의 음역 탓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그냥 앨토가 좋은 것이다.
학창시절 합창단에 들기도 하고 반 대항 합창제를 할 때도 나는 늘 앨토 파트에 섰다.
그런데 앨토는 하겠다는 사람이 적어서 항상 애를 먹곤 했다.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멜로디가 소프라노라면 앨토 파트의 악보는 까다롭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합창을 시작할 때 선생님이 원하는 파트에 가서 서보라 하면 거의가 다
소프라노 줄에 서버렸다. 할 수 없이 선생님이 가려내시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노래의 앨토 멜로디를 알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누가 무슨 노래를 하건 옆에서 화음을 넣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나 자신의 기쁨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새롭고 신선한 즐거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 그럴 역량이 없어서 가끔 아쉽다.
어떤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곧바로
화음을 넣어주는 모습을 가끔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다.
한 사람의 목소리 보다 다른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울어져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일, 바로 합창이나 중창의 매력이다.
그 멋을 쫓아 여학교 시절 중창단을 만들려고 애썼던 적이 있다.
한 친구가 나만큼 화음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차라 의기투합해서 중창단을
만들자고 했다.
뜻이 같은 친구 몇몇을 모아봤지만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피아노 반주자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피아노를 치는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취미를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구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때 애를 쓰던 친구의 열정적인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일이 무산되었을 때 친구의 낙심하던 모습도 지금 눈에 선하다.
하모니의 매력은 듣는 것으로도 멋지지만 내가 그 화음을 만들어낼 때 더 큰
희열을 맛볼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 친구의 낙심은 그렇게 컸을 것이다.
그 친구는 지금도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사석에서든 노래가 나오면 알고 있는 한 화음을 넣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간혹 어느 장소에서 몇몇이 어울려 노래를 부를 때 즉석에서 화음을
맞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화음을 만들기 위해 열중한 모습은
유유상종 통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열의와 기쁨에 빛난다.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세상 모든 일에 적용될 수만 있다면 참 살만한 세상이
되어줄 것 같기만 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아니 음악은 다 좋다. 듣는 것으로 만족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노래를 잘 부르고 싶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으면 할 때도 많다.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행히 앨토에 알맞은
내 음역으로 다른 목소리에 화음을 넣는 일이다.
마산에서 보내온 여성 3중창을 위한 악보를 간직하고 있다.
제목은 '말보다 아름다운'
정말 말보다 아름다운 그 노래를 언제쯤 불러볼까 기대가 많지만 용케 같이
불러볼 사람을 만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죽이 맞고 음악적 감성이 비슷한 이웃이 몇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삶이 한층
풍요해지고 즐거울 것이다.
<우리 17기에 모처럼 들어온 친구들이 있어 이 글을 올립니다. 김순자라는 이름을 보니
그녀의 멋진 앨토가 듣고잡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