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의 전철화로 더 가까워진 들꽃수목원.
수목원은 계절의 여왕인 5월에 가야 가장 예쁜 풍경을 볼 수 있다.
비가 온다.
초록에 내리는 비를 볼 수 있어서 가슴이 뛴다.
이름처럼 예쁜 수목원, 들꽃수목원.
들꽃수목원으로 가자~~
도시락을 싸서 메고.
수목원을 백 배 즐기려면 잔디나 정자에 앉아 도시락도 까먹고 커피도 마시며 친구들과 담소하는게 제격이다.
오빈역에서 800m.
오빈역에 내리면 들꽃수목원 이정표가 계속 붙어있어 오빈역에서부터 시작되는 기분이다.
가는 길에 작약이 활짝 피어 반겨주고
토끼풀이 이렇게 모여 피어 있으니 이것도 새롭다.
가까이 앉아 사진을 찍는데 은은한 향이.... 아카시아 같기도 하고 라일락 같기도 하고....
오~~ 토끼풀에서 이렇게 은은한 향이.....
잔디밭에 하나라도 나면 큰일나는 풀로 천대를 받는 풀에서 이런 향이 나다니....
또 다시 만난 다른 집의 작약.
빗속의 꽃이 더 싱싱하다.
이것은 모란인가?
양평군에서 심어놓은 듯한 거리의 마가렛.....
양평군에선 거리 조경에 작은 꽃을 심어 한층 예쁘게 가꾼 듯하다.
패랭이가 많이 많이 무리지어 있었다.
참 귀여운 꽃
예쁘게 가꾸어진 거리를 즐기며 어느새 도착한 들꽃수목원.
월욜인데다 비까지 오니 사람이 없어 기대가 된다.
우와~~ 이렇게나 큰 수국이...
한송이만 따도 꽃다발이 되겠네~~~~ 우리친구 감탄을 금치 못한다.
집에선 번번이 실패하는 라벤다가 싱싱~~~
들꽃수목원 이름처럼 예쁘고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바이랜드
우산처럼 생겨서 우산나물
은색을 띄어 은쑥인 것도 신기한데 꽃이 피어 더 신기하다.
때마침 이팝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라 이팝도 질세라 모양을 뽐내고.
공작새가 우리에게 오셨느냐며 꼬리를 활짝 펴 인사를 한다.
뭐라고 소리까지 지르며.....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인지라....
꼬리털이 이중으로 되어 있구나...
뒤의 털은 민자이고 앞의 털이 무늬가 있다.
몸의 털 색깔은 흡사 비단 같이 예쁘고 머리에도 예쁜 관같이 털이 솟아 있다.
몸통 바로 뒤의 꼬리털 시작되는 부분의 무늬도 참 예쁘네.
게다가 한번씩 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한다.
부채같이 편 꼬리털에 잔물결이 이는 것 같다.
단풍나무도 꽃을 피우는 계절.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정자에 앉아 그냥 찍었더니 좀 멀긴 하지만....
꽃이 부메랑 모양으로 속에 든 씨앗이 바람에 멀리 날아가게 하기 위함이라..... 자연의 오묘함이 놀랍기만 하다.
정자에 앉아 친구들과 담소를 하고 있으니 속세를 떠나온 기분이다.
앞의 푸른 잔디를 보면서 비를 보면서....
초록에 내리는 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계속 흐르니 한 곳에만 앉아 있기보단 돌아보자고....
방가로도 있고..... 방가로는 잠을 자기 위한 곳이 아니라 그냥 모여 쉴수 잇는 곳으로 되어 있다.
비가 오면 더욱 좋은 곳.
정자가 많이 있고 방가로도 있고, 곳곳에 비를 할 수 있는 정자와 테이블이 정말 많다.
마침 우리 친구들이 옷을 칼라로 입고 와서 더 풍경이 사는구나.
가을에 오면 이 단풍나무들은 또 얼마나 예쁠까....
자연생태박물관 앞의 나무에 핀 꽃.
희귀한 나비도 구경하고
역시 물이 있는 풍경이 예쁘다.
수련이 조는 듯이 빗속에 얼굴을 내밀고...
오늘의 유일한 내 사진.
카메라를 갖고 다니면 동행들의 멋진 사진은 많이 찍는데 정작 내 사진은 없다.
우산천으로 만든 현대식 도롱이를 둘러 입고... 배낭까지 덮어주니 하나도 안 젖는다.
허브식물원의 체리세이지.
레드브러쉬.... 우리말로 병솔나무.
뉴질랜드에 가면 거리에 아주 큰 나무로 되어 있다는 우리 친구의 설명이다.
이것은 앵초란다.
산에서 보던 것만 앵초인 줄 알았는데...
시계처럼 생긴 시계꽃
브라질과 우루과이에 자생하는 '아카'란다.
아스클레피아스 ..... 남아메리카의 나무이다.
카라
후크시아
엔젤트럼펫
이곳은 피크닉장.
많은 수가 단체로 와도 해 먹기에 지장이 없을 듯하다.
이런 곳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자란
만병초
무늬 백정화
알리움
퇴장 시간이 되어 우리가 제일 마지막으로 작은 쪽문을 열고 나왔다.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밖에 나와 다시 안쪽을 들여다본다.
그림처럼 예쁜 정원이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 들꽃수목원
김한길이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의 딸 이민아씨와 이혼한 뒤 쓴 글의 일부...
결혼생활 5년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나한테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어쨌든,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김한길『눈뜨면 없어라』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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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은 시간속에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모든 행복을 저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