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백로[白露]
<요약>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가운데 열다섯 번째 절기. 24절기
<유형> 개념용어
<분야> 생활/민속·인류
<내용>
처서와 추분 사이에 들며, 음력 8월, 양력 9월 9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65°에 올 때이다.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입기일(白露入氣日)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그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 때 우리 나라에는 장마도 걷히고 중후와 말후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의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백로가 음력 7월 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제주도와 전라남도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
경상남도의 섬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근친(覲親)을 간다.
<참고문헌>
『사시찬요(四時纂要)』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문화재관리국, 1969∼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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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di의 Opera 'Nabucco'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
“나부코”는 기원전 바빌로니아 “느브갓네살 2세” 왕의
이름을 이태리식 발음으로한 이름의 약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많은 선지자들의 외침을 무시한 결과 나라는 멸망하고 예루살렘은
파괴되여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노예가되어 사는 종살이의
괴로움 속에서 멸망한 조국과 예루살렘의 성전을 그리워 하며
바벨론 강가에서 부르는 합창곡인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2022년 공연 실황 영상입니다.*
★★★★★★★★★★★★★★★★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스물일곱 살 나이에 삶의 의지를 잃었다.
그가 작곡한 두 번째 오페라는 개막 당일 밤에 막을 내리는 참담한 실패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년 동안 어린 두 자녀의 죽음에 이어 사랑하는 아내마저
콜레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복합적인 트라우마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음울하고 운명론적이며
거친 성격을 고착시켰다. 자신의 존재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점차 은둔자가 되어 삼류소설이나 읽으며 곡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작곡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주머니에 한 극장의 감독이
새로운 오페라 <나부코>의 대본을 찔러 넣었을 때, 베르디는 혐오감에
차서 '거의 폭력적인 몸짓으로' 탁자 위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내던져진 대본 두루마리가 펼쳐졌고,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페이지를
바라보다가 어느 한 문장에 눈길이 멎었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Va pensiero sul'al alidorati.)
바빌론에 잡혀 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시작되는 그 구절이 그의 마음을
뜨겁게 흔들었다. 베르디는 그 문장이 오스트리아의 지배와 탄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국 이탈리아의 애국자들에 대한 은유로 보였다.
거기에 가족을 잃고 작곡가로서도 실패한 개인적인 아픔이 감정이입돠었다.
그날 밤 그는 그 대본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읽었으며,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홀린 듯이 곡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완성된 오페라 <나부코>는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 작품으로 베르디는
오늘날까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되었다. 그리고 '바 펜시에로'
(날아라 생각이여)는 제2의 국가로 불릴 만큼 모든 이탈리아인이 가슴으로
아는 멜로디가 되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나부코>를 공연하면 마지막 앙코르로 청중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따라부르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다.
베르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나의장례식에는 어떤 음악도 연주하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8천 명이 함께
'바 펜시에로'를 불렀다.
생각이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올라야 할 때는 삶이 밝고 희망에 차 있을 때가 아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어둠에 갇혀 있을 때가 바로 그때이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1가의 고전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의 어두운 구석에 앉아 의미도 모른 채 듣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이태리 유학을 꿈꾸는 음악도에게서 가사의 뜻을 전해 듣는
순간, 내 생각도 마음도 어둠 속에서 금빛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젊은 날, 어떤 희망이 문을 열었다.
지금도 나는 뜻밖에 찾아온 병과 싸우며 이 육체적 시련이 내 정신까지 잠식하지
않도록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에서 썼듯이, 신은 길을 알려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조개를 부순다고 진주까지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개가 부숴져 진주가 드러난다.
작가가 아는 모든 빛이 단어마다 깃들 때 그 글은 빛을 발한다.
진리 추구의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작은 성취, 작은 만족, 작은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위대한 성취, 절대 만족, 궁극의 행복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무감동과 무감정을 깨달음의 상태로 착각하게 된다.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영혼
안에 혼돈이 필요하다. 모래 속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온 존재를 다해 달려가지 않는
새끼 거북이는 심해를 경험할 수 없다. 가슴에는 태풍이 있어야 한다.
그때 생각이 금빛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다.
- 류시화 -
<받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