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에서 환경콘서트가 있었다. 누군가가 초대장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선 길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을 관람하러 갔던 중 그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이었다. 이건 뭐 장터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동그라미 안의 350이라는 숫자는 또 뭔가. 진행요원인 듯 싶은 젊은이들이 모두 그 숫자가 들어있는 동그라미 무늬의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초대장을 좌석권으로 바꾸는 일도 오랜 기다림이 소요되었고 모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우아한 음악회를 예상했던 기대를 저버리고 있었다.
우선 사회자가 김제동씨라는 것, 양희은씨가 나온다는 사실만 반가워서 내용도 모르고 나섰는데 환경 지킴을 위한 주제로 열리는 콘서트였다. 아마 입장료의 몇 퍼센트가 환경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기부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초대된 우리 일행은 그저 참석했다는 것 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하는 존재들인 셈이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갖가지 영상들과 출연자들의 멘트를 통해 나름대로 환경에 대한, 환경을 지키기 위한 어떤 인식을 새삼 갖게 될 수는 있었으리라. 누구 못지 않게 지구의 환경파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실제 그것을 위해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일은 정말 미미한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공연장에는 알 수 없는 연기가 자욱했고 기분나쁜 냄새가 일말의 불안감을 자아냈다.
'환경 어쩌고 하면서 이 연기는 뭐며, 이 냄새는 또 뭡니까?'
안내하는 젊은이에게 물었더니 곧 환기를 시키겠다고 했지만 끝까지 연기는 빠지지 않았다. 공연의 성격상 일부러 피워올린 건 아닌가 짐작될 뿐이었다.
소위 'R'석이라는 데 2층은 3층이나 마찬가지여서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대가 너무 멀리 보였다. 어두운 무대 위로 제동씨가 나타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작은 거인이 아닐까.
제동씨는 재담가다. 아무렇지도 않게 친근한 어조로 살짝살짝 세태를 꼬집고 찌르는 데 선수다. 모두 신나 한다. 그의 해박함, 그의 소박함, 그의 평범하다 못해 낮은 분위기를 나도 참 좋아한다. 한 가지만 빼놓고...
아일랜드풍 연주와 노래를 들려준 바들인지 하는 그룹의 음악이 흥겹고 신명이 절로 났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절묘한 하모니도 모처럼 즐겁게 들었다. 부부여서 그런가, 잘 맞아서 부부가 되었을까 가끔 궁금해지는 일이다.
양희은씨는 여전히 노래 잘 부르고 존재감 확실하지만 아쉬운 것은 한결같이 씩씩한 음색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녀를 따라 같이 부르던 그 시절 그 노래는 감동스러웠다. 특히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한계령'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특히 한계령의 도입부는 가슴에서 무언가 쿵 내려앉는 것처럼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언제나처럼.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고 열창하는 안치환의 무대도 좋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안치환의 모습은 하나의 그림이었다. 챙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조끼를 입고 기타를 맨 채 비스듬히 서서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은 가객의 풍모가 두드러졌다. 그런데 그가 '그래 나는 386이다'를 부를 때 나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386세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날 부른 노래들의 반주를 맡은 악기의 편성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타악기, 아코디온, 하모니카, 기타, 바이올린, 전자기타와 건반. 그 악기들이 이루어내는 하모니는 노래와 더불어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조명도 아름다웠다. 클래식 무대에서는 볼 수 없던 어떤 강렬한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찢어질 듯 강한 비트와 사이키 조명이 현란한 윤도현의 무대는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어 나는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공연이 끝나기 전 텅 빈 로비를 거쳐 천천히 계단을 내려올 때의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아마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었더라면 맛볼 수 없었던 기분일 것이다.
쿵쿵거리는 소리는 로비에까지 따라오고 있었지만 내 잔치는 끝났고 그만하면 충분히 즐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느긋해지기까지 했다. 멋진 밤이었다. 나는 광화문 거리를 사랑한다. 밤, 그리고연말이 아닌가. 나는 또 슬며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순전히 벤치에 앉아 책읽는 남자 때문이었다.
어두운 계단 아래 벤치에 혼자 앉아 그가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해졌다. 책읽는 모습은 비록 동상일망정 좋아보였다. 자꾸 밀어두었던 독서, 갑자기 나의 게으름이 민망해졌다. 깊은 밤 광화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