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개인 오후
무지개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네
사랑했던 그 사람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안녕하신지
차길진의 시에 임준희가 곡을 붙인 가곡 “무지개”의 첫 부분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몹시 끌렸다. 곡조에서 풍기는 가벼운 애수도 물론 좋았지만 ‘사랑했던 그 사람은 안녕하신지’라는 후렴구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가시지 않았다.
안녕이라는 일상적인 인사보다 안녕하신지에 그처럼 마음이 끌리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안녕이라는 인사는 다분히 수평적이다. 만나서 하는 인사가 되었건 헤어질 때 하는 인사가 되었건 대상이 시야에 잡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안녕하신지는 어쩐지 수직적이며 3차원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먼 기억속의 대상에게 보내는 인사말이다. 볼 수 없어서 더 생각나는 사람, 그가 편안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 특히 그 누군가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 바람은 좀 더 간절하지 않을까 싶다. 잘 살고 있는지, 모습은 얼마나 변했을까, 가끔은 내 생각도 하고 있을까, 언젠가 한 번쯤 만나 봤으면.
단순한 한 마디 ‘안녕하신지’에는 그렇게 여러 가지 마음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잊고 살 때는 미처 몰랐던 그리움이 그 한 마디에 아스라이 배어 있다. 나도 모르게 후렴구가 자꾸 입속에서 맴돌았다. 내게도 그렇게 메아리 없는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 그러자 지난 날 내 곁을 스쳐간 사람들이 두서없이 생각났다. 그렇게 불쑥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사람들에게 나도 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안녕하신지’
그러자 가슴이 따뜻하게 젖어 오는 듯 했다. 마치 그들이 곁에 있기라도 하듯이 반가움도 희미하게 밀려왔다. ‘안녕하신지’에는 그런 마력이 있었다.
어쩌면 지난날이라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이별의 순간들로 점철된 시간들이 아닐까. 사람도 장소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는 떠나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때로는 아프게 또 가끔은 후련함으로 그 순간을 견뎌내지 않았나 싶다. 삶의 갈피에 숨어 있다가 들추면 화르르 부서져 내리는 마른 꽃잎 같은 기억들은 현재의 시간과 결코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마음 어딘가에 깊이 묻혀 있을 뿐이다. ‘안녕하신지’라는 인사말에서는 그런 의미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수없이 안녕을 고하기도 하고 안녕을 묻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그저 가볍게 스치며 습관처럼 나누곤 한다. 그러나 인사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살아 있음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자 그 흔한 인사가 피차에 참으로 소중하고 놀라운 일로 다가왔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인사를 나누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을 생각할 때 그것은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의례 그러려니 하지만 기적과 같은 일이다.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을 읽을 때였다. 주인공 ‘요코’가 자살을 결심하고 작성한 유서를 읽으며 나는 생각지도 않은 눈물이 쑥 나오는 것을 경험했다. 유서 말미에 요코가 쓴 ‘모두 안녕’이라는 대목에서였다. 요코처럼 고운 소녀가 이 아름다운 세상과 사랑하는 이들을 떠날 생각을 하며 모두에게 안녕을 고할 때의 심경이 그대로 전해져 와 맑은 물 같은 슬픔이 고여 왔다.
그렇듯 안녕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만났을 때의 인사보다도 이별할 때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슈벨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 중에 ‘밤 인사’도 그렇다 .
안녕히
나는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네
:
달그림자 길동무로
들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가네
이제 안녕히
‘이제 안녕히’, 이처럼 쓸쓸한 인사가 어디 있을까. 그 인사에서는 ‘이제’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지금까지의 모든 슬픔이나 기쁨, 헛된 희망조차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자의 비애와 우수가 감돈다.
그런데 말로 하는 것보다 더 사무치는 이별은 말없이 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오래 전 동생이 군 입대 하던 날 보았던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기차역 플랫 홈에 가득 서있던 가족과 연인들이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자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차창 쪽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차창 안에서 밖에서 서로 맞잡던 하얀 손들이 가을 하늘 아래 눈이 시리도록 안타까워 보였다.
그런가 하면 영화 ‘제3의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끝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던 여주인공이 낙엽 가득한 길을 걸어서 떠나간다. 곁눈 한 번 주지 않은 채. 차에 기대어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던 죠셉 코튼, 그가 뿜어내던 담배 연기는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들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처럼.
안녕이나 안녕하신지나 모두 사람의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안녕에 그처럼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울고 웃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사를 나누며 살아갈까 알 수 없지만 때마다 간절한 마음을 담고 싶은 것은 생의 유한함이 절실해지는 가을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