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그의 부인 마미
우리가 생각하는 1950년대는 사실 1945년에 시작되었다.
전쟁도 그해에 끝났고 병사들도 그해에 귀환했다.
세계의 일등국가가 된 미국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바야흐로 타임 발행인 헨리 루스가 일찍이 선언한 바 있는
‘미국의 세기’가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했다.
엉클 밀터와 루시의 텔레비전 쇼 포에버 엠버(Forever Amber),
페이튼 플레이스(Peyton Place) 같은 소설들이 시대를 풍미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후 시대는 나라가 번영을 이루고
사회가 평상을 되찾은 편안한 시기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 편안했던 8년동안 미국을 통치한 사람은 미국인들이 흔히
아이크라 부르는 인자한 모습의 골퍼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원(1890~1969)였다.
그의 선거 유세 구호는 간단했다. “나는 아이크가 좋아 (I Like Ike)”.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백악관에서 지내는 아이크와
부인 마미의 다정한 모습은 모든 이들의 삼촌,
숙모와 같은 친숙한 모습이었다.
미국인들은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고 -
1950년에만 무료 400만 대의 텔레비전 수상기가 팔려나갔다 –
페리 코모의 감미로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또 편안한 교회로 주거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1948년부터 1958년 사이 미국 교외에는 1300만 채의 주택이
신축되었고 그 중 많은 수가 교외 주택 건설의 개척자
윌리엄 J. 레빗이 대량 생산체제로 만든 주택 단지인
롱아일랜드의 레빗타운에 조성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한국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도
시간낭비없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 산부인과 병동에도
아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1946년과 1964년 사이 미국에는
7640만명의 ‘베이비 붐’ 아이들이 태어났다.
미국인들은 스팍 박사의
아기와 아동 돌보기 (Baby and Child Care)와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의 힘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장미빛은 아니었다.
어딜가나 붉은 색이 눈에 띄긴 했지만 빨갱이들은 사방에 널려있다.
동유럽에도 있었고 아시아에도 있었다.
국무부에도 있었고 군대에도 있었다.
한편에서는 아메리칸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을 어줍잖게
모방하는 자들에 대한 저항으로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바라보는 젊은 작가군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먼 메일러(1923~ )는
그의 첫 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The Naked and the Dead)(1948)에서
이전과는 달리 불안정한 미군 병사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편 소설가 J.D. 샐린저(1919~ )는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1951)을 써서
젊음의 영원한 소외를 그려 보였다. 1955년이 되자 미국은
이제 잭 케루악(1922~1969)의 길 위에서(On the Road)와 더불어
‘비트(beats)’ 세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들 비트 세대는 당대의 사회적 제약을 무너뜨리며
안정과 ‘평상(normality)’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나라에서
스스로 추방자가 되었다. 미국인들의 이런 특성은
100여년 전에 토크빌도 이미 심도있게 지적한 바 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2014-03-14 07: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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