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의 안개는 사라지고 ♡
휘익!’
두 마리 새들이 앞산을 놀이터삼아 까불까불 나는 모습이
예삿일 같지 않다.
순간 날렵한 녀석이 그들의 뒤를 연신 쫓아다니더니
산속으로 꼭꼭 숨어 찾을 길이 없었는지 잠시 후
아주 낮게 접힌 날개 짓으로 허우적대며
내 유리창을 향해 날아온다.
아마 그들의 사랑에 눈 감아 주기 어려웠던 몸짓이다.
‘아니,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 8시!’
‘뭘 보고 있는 거야!’
난 순간 멈췄던 시간을 찾기라도 하듯이 부지런히 전철에 오른다.
“월악산, 충주호, 풍기인삼공판장무료방문!”
‘젊은 딸 같은 직원들이 쪼그리고 앉아 애원(?)하는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거길 또 가다니......‘
'무료는 절대 안 가기로 했는데......'
친구들과의 약속이 뭔지 오늘 길을 나선 것이다.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차 안은 화사한 봄옷에 환해지고 있었다.
비는 간간히 내리고
짙은 안개로 분간키 어려운 죽전과 안성을 지난다.
산도 뿌였고
해도 뿌옇고
5월의 신록은 뿌연 안개를 실컷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리창은 닦고 닦아도 안개색이다.
내 맘만 수시로 변하는 줄 알았는데
창밖 세상 역시 빗소리에 조용히 변해가고 있었다.
수십 년을 살 듯 마구 쏟아 낸 잎들이
향방을 모르고 흔들린다.
크고 작은 산들이 겹겹이 쌓인 산을 돌고 돌아가는 길목의 작은 꽃밭에선
시들지 않을 것 같은 꽃 잔디가 꽃방석을 이루고 있었고
마주보고 있는 산은 오늘도
마주하며 안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림 같은 산모롱이 작은 산길엔
경운기가 탈탈대며 힘겹게 달리고 있었다.
산 벚나무는 여기저기서 내 흰머리처럼 스러져가고
라일락은 부지런히 제 때를 만끽하고 있었다.
막힌 길, 사라진 길을 모르는 새들은
무엇에 놀랐는지 달아나듯 날고
종례와 경희는 미스코리아 행진하듯 차 안을 오가며 간식을 나르고
홍도 사진을 보며 즐거워한다.
어디만큼 달렸을까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달려 온 버스는 낯익은 골목을 돌아
풍기인삼공판장 앞에 선다.
몇 년 전 동네모임에서 갔을 땐 공짜에 기가 질려
도살장 끌려가듯 무거운 발걸음이었는데
오늘은 공짜 물건 받으러 가는 듯한 가벼운 발걸음에 놀란다.
잠시 침묵이 돌자
말쑥한 차림의 김 과장님께서 능숙한 제품 설명이 시작된다.
아는 게 힘이란다!
여기가 풍기란다!
풍기에서 만든 흑삼은 누구에게나 다 좋단다!
9번 찐 명품 흑삼으로 늙어서 멋지게 살란다!
갈 때는 수차 안 살 것을 다짐했는데
싼 것 같아 차차 솔깃해지고
나와의 약속은 홍수로 제방이 무너지듯
내 마음을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얼떨결에 신청서를 쓰곤
내 선택이 우월한 듯 오히려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한 보따리를 선물 받은 듯
금세 건강을 되찾은 듯
발걸음이 자신만만해져 나온다.
우리의 떠남을 허전해 할
안개 낀 충주호를 잠시 들려 남한의 금강산이라는 월악산을 가야했다.
하늘은 미안했던지 급하게 안개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적막감이 돌며 신비함을 감춘 영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뒷발이 잘려진 노숙견이(?) 뒤뚱대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산울타리가 보호막이 되어
자연이 주는 순수함 속에서 편히 살 줄 알았는데 이런 상처를 보다니
한창 신이 났던 나는 상처를 안고 돌아선다.
저 산 속은 지금도 이름모를 동물들이 사랑하며 새끼를 낳고
물고 물어 듣기며, 쫓고 쫓기며
그들의 영역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것이다.
‘에잇......’
보이지 않는 해는 엿가락처럼 휘어져
한참 쉬어가도 좋을 듯한데
우리 생각을 모르는 버스는 냉담하게 서울로 향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두고 온 것도 없는데 되돌아보고 아쉬워한다.
“아버지 종도 내 종만 못하다”는 속담을 뻔히 알면서
못 올라간 월악산을 탐내고 있는 것이다.
내 집 앞산의 풍광이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사랑하며 새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 볼 것이다.
잠시 차 안은 조용하더니
깨알만한 올갱이국에 기운이 났는지 차 안은 자꾸만 시끄러워져간다.
쥐어 준 떡도 쥘 줄 모르는 미완성 인간으로 태어나
완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여러 과정을 거쳐
하나 되기 쉽지 않은 길
세상 바다 한 가운데서
“수도여고”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만난 것이다.
잘난 건 무엇이고
못난 건 무엇일까
“도토리 키재보기 인생!” 그 자체가 아닌가.
우린 계속 노를 저으며 바람을 맞고 바람을 거슬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항해할 것이다.
파도가 두렵고 풍랑에 마음 갈피를 못 잡더라도
분명한 이상과 지혜를 갖고 있다면
분명 우리의 닻은 아름다운 항구에 도착할 것이 아닌가.
중간 중간 막힌 길에 잔칫상 분위기는 접혀가나
뿌연 해가 억지로 하늘을 열 때 ‘와!’소리가 절로 나온다.
마침 “비 맞은 닭”들이 된 우리는
유부우동 한 그릇에
속이 확 풀려
목소리는 더 커간다.
잠시 후 어둠은 쉽게 몰려올 테지만
우리의 어둠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고
지친 한숨도 날려 보낼 것이며
빛이 아닌 어둠의 요소는 까만 밤에 영원히 묻힐 것이다.
오늘의 기쁨이 영원한 기쁨이 되기 위해
우린 사랑 받기 위해 사랑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비닐봉지 소리가 버스럭거린다.
아마 종점이 다다른 모양이다.
‘아! 시발점이 종점이고, 종점이 시발점이네!’
'우린 흙으로 태어나 흙으로 가는데......'
‘아! 마찬가지네......’
글 : 윤영자
사진 : 이경자
~♬ 음악과 함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