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날(2018.4.30.)
사월초 하동 섬진강물 따라 가지마다 흐드러진 벚꽃 구경을 마친 백합산악회 행사
오늘 사월 말 다시 대구 고령쪽 행선지로 출발하기위해 모두 압구정 주차장으로 삼삼오오
선후배 동문들 반가운 얼굴로 버스에 승차하였다.
여느때와 달리 바나나까지 푸짐하게 아침식사와 간식 먹거리를 받아들었다.
미세먼지인지 뿌연하늘로 시야는 맑지 않았지만 차창 밖으로는 신록을 머금어 연둣빛으로 반짝이는
나뭇잎새가 아직은 봄이노라 말하는듯 하였다.
9시경 천안휴게소에서 잠간 휴식 1,2호차로 나뉘었던 동문들의 정감어린 만남 인사가 이어졌다.
청주 상주 영천을 향하여 구비구비 수많은 터널을 지나 경상북도 진입. 버스는 싱싱 달려 마지막
효령터널을 빠진후 드디어 팔공산 이정표가 보였다.곧 첫 탐방지 동화사에 도착 할줄 알았는데
S자곡선 도로가 한참이어졌다.
첫 탐방지 <동화사>-493년(신라 소지왕 15년)극달화상( 極達和尙)이 창건,창건당시에는 유가사(瑜伽寺)로
불리었지만, 832년(신라 흥덕왕7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사찰을 크게 중창할 때 겨울인데도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서 동화사(桐華寺) 바뀜-.
절 입구 일주문 왼쪽에 마애여래좌상이 있었다.오른손은 무릎에대고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배꼽 앞에, 머리와 몸 뒤의 광배는 두 줄의 선으로, 앉아 있는 연꽃대좌가 구름 위에 떠 있어 사뿐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글판을 보았다.마애불이라해서 웅장하게 크지도 않고 잔잔한 모습으로
천 여년을 지켜온 세월이 경이로왔다.
사찰 경내로 가기까지 끊임없이 돌돌거리는 계곡 물소리,이름모를 새소리, 병꽃나무,
오색으로 매단 봉축등, 반짝거리는 연녹의 숲터널 자연의 선물을 즐기며 걸었다.
걷는동안 세속의 오심도 많이 정화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1992년 준공한 높이 33m 통일 약사대불을 둘러보고
대웅전 앞마당가득 장식된 봉축등과 탐스럽게 핀 목단꽃을 보았다.
<산중식당>에서 '불맛담다'란 메뉴의 불쭈꾸미,가마솥밥점심을 맛있게 먹었다.정갈하게,담백하게,
여백의 味 산을 닮은 밥상 슬로건에 걸맞는 착한 음식점이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 탐방 -방천시장 350m 길에 "진지하게 살며 노래했던 그가 있음에
우리 삶의 노래가 있다. 나의노래가 너의 노래, 우리의 노래"라는 철학적 성숙함을 보여준 노래하는 노동자
김광석(64.1.22~96.1.6)을 기리는형형색색 이모양 저모양의 벽화,공연장,이벤트장,
기념벤치,기념품가게를 견학하였다.
<대구 근대 골목 돌아보기>근대 路의 여행-골목투어 란 글이 쓰인 아취문을 통과
동산의료원을 지나 대구의 몽마르트언덕이란 청라(靑羅)-푸른담쟁이 넝쿨-언덕에 들어서서
선교사 블레어주택(교육역사박물관) 선교사 챔니스 주택(의료박물관)
선교사 스윗즈주택(선교박물관)
청라언덕에 얽힌 '동무생각(思 友)'박태준작곡 이은상작시의 노래비,
동산의료원 외국인 묘지 (은혜정원) 현진건길, 3.1운동길(대구에선 3.8)
현제명보호수이팦나무,사과나무100년,
제일교회(고딕건축)까지문화 관광해설사와 함께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다시금 조선에 교육, 의료,종교, 문화 발전에 크나큰 공을 세우시고 순교 헌신하신 선교사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깨우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였다.
길을 건너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서울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의
계산동 성당을 둘러본후 일제의 칼날에 맞선 저항詩로, 나라 잃은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은 독립 투사로,
학생들에게 민족을 깨우쳐주던 스승으로 짧은 생을 불태운 시인 이상화(李相和 1901~1943) 고택 안마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詩碑의 싯귀를 잠간동안 음미 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의 거장으로 일제로부터 국권을 찾고자 나라 빚을 갚자는 모금활동에 앞장 섰던
민족 자산가 서상돈 (徐相 燉(1850~1913)고택을 둘러보았다.
오늘날 눈부신 대한민국 발전의 원천은 애국 애족하신 선각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깨닫게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산호찜갈비> 식당에서 찜갈비와 육개장 찌개로 식사후 숙소인 비슬산 휴양림으로 향하였다.
가는길 곳곳에 흰눈이 덮힌듯 이팦나무 가로수가 장관이었다.
스멀스멀 어둠이 밀려와 깜깜해서 휴양림 관리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숙소동까지 대형버스 진입은 절대사양 ~!!! 몇해전 팔영산 휴양림 생각이 떠 올랐다.
걸어서 걸어서 오르막길을 경사가 가파른 곳도 꽤 많았다.
"고난의 행군,극기 훈련이다"." 어디지?"" 어디지?"
하면서 하염없이 걸어 기별로 숙소동에 입소하였다.
관리 사무실 배려로 봉고 운행을 해 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