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여러분!
제가 이제 떠납니다.
8살에 학교에 들어와서 63살에 학교 교문 밖으로 나갑니다.
60년대 말,
교복을 입었던 여고 시절까지의 생을 마무리 하고 여대생 시절로 돌아가듯
정장을 벗고 헐렁한 바지를 입는 마음으로,
아니, 상큼한 미니스커트를 입을 설레임도 있습니다.
편한 옷을 입고 늦은 아침에 훤한 우리 집 거실에서 우뚝 솟은 나무의 나뭇잎이
바람결에 살랑이며 은빛을 발하는 것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할 겁니다.
이제 좀 쉼표를 찍고 길게 호흡을 가다듬으렵니다.
이처럼 모교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여러분들의 축복 속에서 정년을 한다는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내 영혼의 요람인 나의 모교에서 제가 진정 바란 것은 우리 수도여고의 역사와
전통을 선명하게 살려내어 후배들이 영원히 학교를 사랑하고 자신의 영혼을 담을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런 소망을 이루도록 교직원과 학생들을 사랑하고, 고마워하고, 좋아 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무한이 학생들을 사랑해 주시고, 온 정성을 다해 지도 해 주는 그런 선생님들을
원했습니다.
또한 그 선생님들을 따르고, 배우며 집안에서는 효를 다하는 그런 학생들을 바랐고,
학교 시설은 깨끗하게 수리하고, 고쳐서, 빈자리를 아름답고, 실용적이게 만들고,
무엇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고 놓는 일이었습니다.
부임할 때 계획했던 것이 많지 않아서인지 거의 다 했습니다.
그 결과 학교가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랑받는 학생들로 가득 찬 향기 나는 학교라는
칭송과 다양하고 학생 스스로에게 알맞는 대학에 진학시키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2010년도에는 학교경영 우수학교 표창과 10.9 대 1 이라는 학교 선호도와 서울의
교장이나 교사들이 근무하고 싶어 하는 학교로 발전했습니다.
이 모두가 여러 동문회의 지원으로 이루어 낸 것입니다.
제가 모교에 부임해서 당돌하게도 어려운 부탁들을 동문들께 했습니다.
저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총동문회와 남가주 국제 동문회 준비위원회, 여러 동문회등
그 이외도 많은 동문들께서 제 분에 넘치게 후원을 해 주셨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저는 부슬비 내리는 백합동산을 사랑했습니다.
지난봄에는 백합동산의 녹색의 잔디위에 보라색 제비꽃이 만발했습니다.
3년전에 동문 선배님의 야생화농원에서 얻어다 심은 온갖 야생화와 해당화가 끊임없이
향기를 뿜으며 매일 매일 새롭게 피어 날 때 난 행복 했습니다.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이제 저는 가족과 함께 가을의 따가운 햇살에 적시에 빨래를 널 수 있는 그런 여유로움
속으로 갑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로움 속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일상사에 성실하며 순해 지려 합니다.
동문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11년 8월 29일 천 행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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