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창생 미국 여행기
20기 박진우,성정순,유은희,김경숙
나이 60을 훌쩍 넘어 동창생 4명이 미국 서부여행을 하게 되었다.
뽀얗고 고운 모습에 발걸음도 재던 소녀가 아닌-이젠 얼굴의 주름이 짙어지고 손마디가 굵어가며 인생의 굴곡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조금은 여유로움이 있는 이때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설렘이 넘쳤다.
밥을 해줘야하는 어린 자식도 없고, 함께 나이 들어 아내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남편도 이젠 점점 나를 이해하며 지원도 해주고 있고...
그저 친구들과 함께 건강히 지내다 오기만하면 되는 여행이었다.
5월 10일 11시쯤 인천공항에서 커다란 가방 2개씩 그리고 웃음을 얼굴 가득 담은 나이든 소녀(?)4인방이 모여들어 짐을 부치고 환송 나온 남편들과 자녀를 보내고 김밥 등 준비해온 잔잔한 것들로 속을 채우고...
11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우리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제1일 : LA에 도착 후 길거리 보도블럭에 별들 속에 마이클 잭슨, 우리나라 안성기씨 등의 이름이 새겨진 할리우드 거리를 보면서 미국의 아카데미시상식을 하는 장소를 구경했다.
조금 실망도 했다-크고 웅장하며 화려한 것을 상상했던 터였기 때문이었다.
마더스데이(어머니날)여서 곳곳에 꽃을 파는 가게들이 보였고 식당에서도 부모님들과 점심식사 하는 모습이 많았다.
제2일 : 브라이스 캐년을 지나 자이언 캐년을 보면서 수직절벽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며 AMAZING GRACE(찬송가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음악과 어울려 신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에 감동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음악은 사람의 가장 깊은 것을 건드리며 내면적인 것을 표출하는데 가장 걸맞은 도구임에 틀림없다.
제3일 : 문제의 그 날!
신의 걸작품 -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은 미국 애리조나 주 북부에 있는 고원지대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여진 거대한 계곡이다. 여기서 계곡으로 들어가는 콜로라도 강은 서쪽으로 446km의 장거리를 흘러서 계곡의 출구가 되는 미드 호로 들어가는데 이 구간의 양편 계곡을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지역이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인디언 부족의 땅에 속한 지역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강을 따라 고무보트 배(Raft)를 타고 캐니언을 통과하는 관광을 할 경우 2주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니 캐니언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인 계곡의 깊이는 1,600m에 이르고 계곡의 폭은 넓은 곳이 30km에 이른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노력으로 1908년에 그랜드 캐니언은 내셔널 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고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서울~부산까지의 거리(서울-부산 편도 거리380Km)보다 더 넓은 지역을 눈으로만 볼 수 없어 시끄럽고 흔들거리는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오르는 순간 ‘앗’하고 후회가 되는 것이었다.
멀미~~~
4인방 인솔단장인 진우가 00봉투를 달라고 하며 얼굴색이 변하며 힘들어 하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늠름한 카메라맨 정순이(사진 찍는걸 아주 좋아함이 이번 여행에서 여실히 밝혀짐)도 있었지만 다른 세 명은 화장실에서 단단히 뒤처리를 해야 했다.
그 때 작은 몸집에 단아한 얼굴의 여행객일행 한분이 ‘이렇게 하세요.’하면서 여러 차례 진우를 걱정하며 우리 옆에 오셔서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었다.(그 때 그 친절 하던 의사분이...)
고생 끝에 낙이라고 했던가? 그 날 점심은 최고로 고급스런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됐는데 단장인 진우는 누워서 위로 받는 것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날 밤-
콜로라도 강가의 휴양도시 라플린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는 어둠속에 있는 콜로라도 강가에서 비치의자에 몸을 눕히고 건강 체조, 한국 춤, 정순이의 멋진 댄스 동작에 동요, 가곡, 고교시절 합창대회의 지정곡인 ‘저 하늘의 뭇별 보라 저 멀리 간 나의 벗~’까지
그냥 우리는 10대의 소녀가 되어있었다.
제4일 : 어제 여러분이 멀미하는 우리를 염려해주던 것이 고마워서 우리가 준비해간 강화인삼사탕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 가이드 하시는 분께 드렸다.
함께 여행한지 며칠이 돼서 우리4인방이 친구사이인 것을 슬슬 알아가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가이드에 의해 ‘수도여고’인 우리의 정체가 밝혀지고~~
앗! 진우를 그토록 염려 해주던 그 여의사가 우리의 10기 정희영 선배님이고, 그 남편의 친구 분들-세 쌍(성남고 7회? 동기)중 함께 스웨덴에서 온 12기 신태순 선배님도 함께 만나게 되었다.
버스 안이 갑자기 환호성과 함께 다들 부러워하는 맘으로 진심어린 박수가 터지고 우리도 이국땅에서 선배를 만났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되었다.
미국 서부여행길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선배님들을 만나는 행운에 우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남고 동기가 세 쌍이나 서로를 초대해서 함께 만난 여행이었다.
성남고와 수도여고의 동창모임 같은 서부 여행길은 화기애애한 가운데 나머지 여행일정까지 기쁨으로 할 수 있었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느냐가 여행의 진미임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후배가 함께하는 자릴 마련하면 선배님 남편 분들이 돌아가며 식사며 간식과 아이스크림까지 대접해주며 어떤 여행보다 진한 동지애를 느꼈다.
선배님의 모교사랑은 절절하며 끝이 없었다. 현재 대방동에 있는 수고여고 우리의 후배들을 어떻게 도울까와 모교의 위상을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올릴 수 있을까를 두고 깊이 생각하고 이런저런 방도를 이야기 하셨다.
이점에서 난 많이 반성을 했다. 막연한 안타까움만 있었지 선배님처럼 모교를 도울 생각은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목사님 사모가 된 이명희 집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스러운 맛난 음식을 대접받았고, 우정이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먼 곳에서 첫날부터 졸업앨범을 들고 찾아준 영란이와 옥주의 우정에 모두 감격했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우리 일행에게 차에 먹을 것을 가득 싣고 나타난 영란이.
바쁜 일정을 마치고 피곤을 무릅쓰고 찾아와 낭랑한 고운 목소리로 여러 차례 ‘하늘을 보세요.’하며 우릴 동화 속으로 이끌던 소녀 같던 옥주.
옥주 말대로 이젠 자주 하늘을 보기로 했다. 저 높은 곳에 나의 시선을 두기로...
서로에게 진심어린 덕담으로, 고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수도여고 동창!’이었다.
수도여고- 참으로 좋은 학교구나! 모두들 고운 모습으로 긴 시간을 잘 살아 왔구나!
그 곳에 사는 친구들에게 넘치도록 귀한 대접을 받아 그저 감동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함께 여행한 우리 4인방도 그저 무난한 성격이라 누구와 어울려도 잘 어울릴 친구였음에 감사했다. 각자 잘하는 것으로 다른 친구를 배려하며 2주일간의 여행을 멋지게 보냈으니까.
아름답다는 것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창이라 그런지 우린 잠깐사이에 하나가 되었고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젊어서는 누리지 못했을 자유로움을 맘껏 누렸다, 아무 것에도 메이지 않아 나이가 들어도 늙어가도 그저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