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2010.03.17 13:01:26 조회328
멀리서 날아온 불청객이 남아 있는 듯, 하늘이 부옇다.
몸도 나른하고.
책을 펼쳤다.
얼마전에 산 2010 이상문학상작품집 겉면을 장식한 박민규의 '아침의 문'을 또 읽었다.
젊어서, 너무 젊어서 그 어네지가 힘을 발휘한 작품에 한숨이 쏟아졌다.
너무나 잘 썼기에 흠이라도 잡으려는 심술이 발동했다.
박민규는 수상을 한 후 시상식에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엄숙한 보통의 시상식장과는 딴판이다.
게다가 말리라는 재즈가스도 나와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낡은, 어쩌면 늙은 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기성세대들을 잠깐 당황시켰다고 전해들었다.
나는 매우 부러웠다.
젊기에 새로움을 창출할 수 있고 금방 새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그랬다.
흡수하기에도 혹은 가까이 다가가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나이잖는가.
2008 이상문학상작품집 맨 끝에 그의 우수작 작품이 실려있어 그걸 집어들었다.
"낮잠"이다.
분명히 2008년도 읽어 봤을텐데 첫문장이 생소하다.
65살의 노인은 주변을 정리했다.
자의 보다는 환경과 타의에 떠밀린 결정이었다.
아내가 자궁암으로 투병중, 마지막에 이른 어느날이었다.
아들과 딸이 병실에 와서 정리해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내의 몸안에 있던 암이 세상 밖으로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가 죽은 후에 뇌졸중으로 잠깐 정신이 혼미했고 요실금이 찾아왔다.
그 상태를 어렵게 며느리에게 털어 놓았지만 바라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같이 살자는 그말을 듣고 싶었다.
평생을 간직한 집을 팔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많지 않은 돈이 든 통장만 가지고
고향에 있는 요양원으로 갔다.
낮잠을 잤다.
아련한 추억의 한장면을 꿈으로 엮고 그 아늑함에 젖어 있을 찰나 눈을 떴다.
엉덩이 감싼 그 무엇이 묵직했다.
오줌을 싼것이다.
기저귀를 처리하게 위해 들어간 화장실.
거울에 든 노인의 얼굴을 본다.
자신이 아닌 것처럼.
내가 이소설의 주인공에 가까운 나이여서일까.
부연 사위가 마음을 물컹하게 만들어서일까.
머지않은 날에 나도 그 모습일 수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글프게 일렁인다.
전화가 왔다.
친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직은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내고,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친구와의 대화가 서글픈 마음을 잠재웠다.
그래.
아직은 아니야.
여러갈래의 의견을 정확히 소통할 수 있잖아, 하면서도 낮잠의 여운은 그림자를 만들고 만다.
지나가지 않은 세월을 미리부터 불러 들이지 말자, 라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