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동문회보에 실었던 글 같은데 홈피에 올려보면 여기 등장하는 친구들도 어디선가 볼 수 있을까 하여
올려봅니다.
모처럼 환한 이른 봄날, 문서파일을 뒤져보다 눈에 들어와서요.....
갑자기 잊고 있던 노래 한 곡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엔 몇 소절만 레코드판 튀긴 것처럼 반복해서 흥얼거렸다.
하얀 칼라를 덧댄 교복, 귀밑 1센티미터의 단정한 단발머리, 그녀들은 비스듬한 자세로 나란히 서있다. 자신만만한 모습, 노래는 수준급이다.
무슨 행사였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이름이 다 생각나지 않지만 대강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김은옥, 장정자, 유희경, 유현심…. 모두 일곱 명이었던가? 아마 YMCA 산하 클럽이었던 것 같다. 노래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친구들이 화음을 맞춰 부르던 노래였다. 그런데 그 가사가 압권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기발하게 녹여낸 참신하고도 유쾌한 가사도 그녀들이 만들었다고 들었다. 재기가 번득이는 친구들이었다.
한 번 기억나자 기왕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불러보고 싶었다. 노래의 전부를 기억해내려고 애를 써봤다. 다행히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며 되살아나는 노랫말들. 마치 퍼즐이라도 다 맞춘 듯 기쁜 마음에 혼자 신이 나서 불러본다.
학창시절, 그때의 설익었던 감정들이 간지럼처럼 오글오글 피어오른다. 지금 생각해도 엄지 척 올려주고 싶은 친구들의 재치. 새삼스럽게 그리움에 가슴 한쪽이 아릿해진다.
아침 일찍이
책가방 메고
종점으로 종점으로 달려갑니다.
버스는 복잡해
기술본위야
학생들의 눈동자는 말똥말똥해
저기 저 남학생 용고 배지 달고
새치기 하여 버스를 타면
우리 수도학생 나란히 앉아서
손목을 잡고 윙크하네.
제대로 기억한 걸까. 아니 맞을 것이다. 멜로디는 아마도 슈만의 '즐거운 농부'에 가사를 붙였던 것 같다. 멜로디를 글로 재생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 동기생 몇 명이 무슨 행사에선가 나란히 서서 이 노래를 부를 때, 그 기발함에 무릎을 쳤다.
'버스는 복잡해, 기술본위야'
그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히 시적 감흥마저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을 그처럼 딱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는 재능은 시인에게만 허락되는 법.
기억나시는지, 그 시절의 버스, 생각만 해도 아찔한 만원 버스, 발 디딜 틈도 없는 그 버스에 기어이 올라타야만 하는 학생들의 절박함, 그래도 용케 그 틈바구니를 뚫고 구겨지다시피 승차에 성공하면 허리에 전대를 찬 안내양이 접이식 버스 문을 닫기 위해 운전기사에게 암호를 보낸다.
드높은 '오라잇' 소리와 동시에 버스 몸체를 탁탁 힘차게 두드린다. 버스는 위태로울 만큼 급하게 각도를 튼다.
안에 엉겨 있는 사람들은 체에 걸러지는 곡식 알갱이처럼 균일해지고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겨우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낸 빈자리는 다음 정거장에서 또 그런 식으로 채워지곤 했다.
이웃하여 그래도 우리와 쌍벽을 이룰 만큼 괜찮은 남학교가 있었다는 일, 행운이었으며 지금도 달콤하게 되새길 수 있는 추억거리다. 뿐인가, 알 수 없는 동지애에 가슴 뿌듯해지고 만나면 턱없이 반가워지는 용산고.
익살스런 노랫말을 만들고 모모한 시스터즈 처럼 비스듬히 몸을 돌려 나란히 선 채 손짓도 해가며 노래 부르던 멋들어진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또 계절이 바뀌려나 보다. 자꾸 옛 생각이 나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