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사람
金玉善
단골 반찬가게에서 백발 부부를 만났다.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가 반찬을 고르는 동안 앞을 못보는 듯한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조용히 서계셨다. 할머니가 손을 떨어가며 계산하는 걸 보니 파킨슨병 의심이 갔다. 손잡고 걸어가는 어르신들 뒷모습을 찡한 심정으로 지켜 보았다.
헌데 백발 부부는 건물주였다. 시장 근처 금싸라기 땅 빌딩의 주인이었다. 매달 어마무시한 월세가 들어오나 그들은 남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돈을 쓰지 않는다 했다. 할아버지가 실명한 것도 병원비를 아낀 게 원인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데 건물주 내외는 변함없이 자린고비로 살 모양이다. 시장 상인들이 사람 두고 편히 사시라 아무리 권해도 우이독경이라니 말이다. 물려줄 자식도 없다는데ㅡ.
동네 미용실에서 본 광경이다. 예약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앞 손님 파마가 끝나지 않아 기다려야 했다. 60대로 보이는 손님은 이마에 짜증이라 써붙인 듯 강파른 얼굴에 말투가 신경질적이었다. 옷차림에서는 궁기가 흘렀다.
알고보니 그녀는 소문난 알부자였다. 고생고생해가며 재산을 모아 그런가, 한번 움켜쥐면 펼 줄 모른다 했다. 가족에게 투명인간 취급받으면서도, 외롭다고 하소연하면서도 돈 쓸 생각은 1도 없단다.
'돈주머니 크다고 인심도 후하랴'라는 속담이 있다. 통장 두둑한 것과 인심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족에게 왕따 당하면서도, 주위에 사람 하나 없으면서도 돈을 선택한 여인이 측은했다.
나는 인색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쓸 데 쓰고 아낄 때 아껴야지,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사람에겐 정이 가지 않는다.
친지 중에 왕소금이 있다. 살림이 넉넉한데도 얻어먹기만 할 뿐 커피 한번 사지 않는다. 누가 밥 산다고 하면 식솔까지 데리고 나와 덤터기를 씌운다.
남들이 뒷담화하는 걸 모르는지 그는 자신을 후하게 평가한다. 그래서 테스 형이 이렇게 말했나 보다. 알라, 니 꼬라지!
마땅히 지갑을 열어야 할 상황인데도 시침떼는 이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자린고비와 엮이다 보면 미운 마음에 죄를 짓기 때문이다. 나까지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여러 번 베풀었는데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답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갈등이 생긴다. 바다 같이 넓은 인품이면 품어주겠지만, 속좁은 나는 표시 안 나게 상대방을 손절한다.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주머니 풀면서 살 생각이다. 상식이 통하는 이들과 먹고 마시고 대화하다 갈 생각이다. 베풂의 기쁨을 아는 이들과 오래 교유하며 여생을 즐기련다.
쓰죽회라는 단체가 있다.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지 않고 다 쓰고 죽자는 모임이다.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쓸 때는 기분 좋게 쓰며 폼나게 살고 싶다. 나이 들어 쓰는 돈은 낭비가 아니니까ㅡ.
(202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