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
2008.12.03 00:52:44 조회700
EBS에서 매주 뭘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프로가 있다.
가끔 그 프로를 보며 혼자서 꿈을 꾸곤했다.
매일 시간을 맞추는 게 얽메이는 것 같아 아예 일요일에 방영하는 종합편을 본다.
지난주에는 건축디자이너가 모로코의 모습을 보여줬다.
나보다는 십년이상이 아래이지만 편안하고 섬세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박삼일간 모로코를 여행하며 느꼈던 것과는 판이했다.
나는 "척박"을 떠올렸다.
여행 내내.
그 사람의 시선은 신비와 낭만에 쏠렸다.
자신이 붉은 사하라사막을 밟아 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사하라에 다다르자 사막에 누웠다.
하늘은 보며 양 팔을 쭉 뻗고 누운 모습은 평화로움과 성취에 도달한 절정이었다.
꼭 성에서만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지그시 감은 눈, 환희가 얼핏 스치는 얼굴, 안락함이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
삼십년전이었다.
일급정교사 교육을 공주사대에서 받았다.
서양미술사 교수가 그라나다의 풍경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강의를 했다.
알함브라궁전이며 그밖의 모습들.
나는 넋이 나갔었다.
내 생애에 갈 수 있으려나.
그런데 우연히 그곳을 가게 됐다.
나는 그라나다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그 건축가처럼 절정을 경험했었다.
막연히,
저런 사람과 남자 여자의 관계를 떠나서 같이 여행을 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곤조곤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겠지.
보는 눈이 비슷해 손바닥을 치며 감동을 표출할 지도 몰라
구태어 서두르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성격.
편안해 보였다.
지난주에 동생을 만나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깔깔 거리며 웃는다.
그 사람을 잘 안다면서.
현실감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그 현실감의 부재는 내게도 해당된다.
아마 그래서 같은 느낌으로 편안하게 생각되었나 보다.
이번 주는
네팔을 사진작가가 여행했다.
트레킹코스를 오르며 자신과의 싸움을 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처음 시작한 트레킹을 너무 험한 곳을 선택했지 싶었다.
어쩌면 내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들킨것만 같다.
오를 수 없는 꿈을 가지며 마음을 졸이고 한숨을 날리는 나와 같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찍어낸 찰나의 정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동이 트기 삼십분전과 해가 지기 삼십분전이 사진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알았다.
카투만두를 흐르는 강.
강가를 따라 늘어선 시신, 화장터였다.
끊임없이 연기는 피어오르고 시신은 재가 되고 만다.
화장된 뼈가루를 강에 뿌리고 뿌연 강물에서 아이들은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죽음과 삶의 동시성이다.
그 강물을 흘러흘러 인도의 갠지스강으로 흘러들기에 죽은 자의 염원을 풀어 준다고 한다.
나도 체력과 여건이 된다면 그런 낯선 여행을 해보고 싶다.
죽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