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여행기> 미쳐부러!
2010.04.21 08:16:35 조회727
미쳐부러!
김옥선
서울선 그리도 아프던 허리가 진도(珍島)에서는 멀쩡하였다. 전날까지 통증크리닉을 다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벚꽃에 취해서였나 아니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에 취해서였나?
여고졸업 40주년 여행에 나선 흰머리 소녀들은 마치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듯 설레는 표정이었다. 자주색
바클로 조이고 또 조이던 가는 허리들이 이제는 듬직한 통나무로 변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인 모양이었다.
이번 여행은 일종의 문화체험여행이었다. 진도에 도착하자마자 문화해설사가 동행하여 가는 곳마다 설명을 하여 주었고, 숙소인 국립남도국악원에서는 가야금 공연과 장구치기 등을 마련해 놓았다.
진도!하면 진돗개와 진도아리랑 밖에 모르던 내가 이번 여행으로 조금 유식해진 기분이다. 이순신의 명량대첩 장소가 진도대교 아래이며 명량해협이 울둘목이라는 것, 진도의 무형문화재인 강강술래를 강강수월래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5대째 화가를 배출한 운림산방을 가 보고서야 허련(소치)과 허백련(의재)이 다른 사람임을 알고는 혼자 씁쓸히 웃었다. 그들이 모두 양천 허씨이고 내가 양천에서 태어났는데도 잘 몰랐던 것이다.
졸업하고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니 37명 동기들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여고 시절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왠지 한참 선배 같아 보이는 친구도 있고, 초등학생 손자를 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원싱(원래 싱글)인 처녀도 있다.
친구들을 보며 나를 돌아 보았다. 한때 새침한 문학소녀였으나 결혼 후엔 속물 수다쟁이가 되었고, 맞벌이하랴 취미생활하랴 무리하여 지금은 허리 튼튼한 사람을 가장 부러워하는 신세가 되었다. 운전은커녕 텔레뱅킹도 못 하는 기계치이지만 그래도 약간의 말재주는 타고나 동창 행사 때마다 마이크를 잡으니 다행이다.
남도국악원에서 밤을 보낼 때 일이다. 전문가의 지도로 꽃향기 가득한 마당에서 강강술래를 마친 후 우리 방에서 맥주 파티가 벌어졌다. 환갑이 낼모레인 아주머니들이 집을 떠나 오랜 동무들과 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여간 정겹지 않았다.
친구들이 흥겨워하는 시간에 내 머릿속은 잠시 복잡하였다. 내 방에 온 손님들을 어떻게 기쁘게 해드려야 하나? 맥주 한 두 잔에 발그레 상기된 동문들을 보다가 문득 동안(童顔)을 뽑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앉은 방식구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모두 좋다 하였다. 몇 몇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동안 챔피언(김순기)과 금은동상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미리 준비해간 상품으로 즉석에서 시상을 하니 분위기가 약간 고조되며 다른 부문에서도 1등을 뽑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 결과, 염색 안 한 자연머리상은 정봉임이 받았고, 예쁜 가슴상은 정경임이, 쇄골미인상은 치열한 경쟁 끝에 이경희에게 돌아갔다. 홍명희가 작은 발(220mm)상을 받자 이지수가 큰 발도 뽑자며 250mm 대발을 내밀어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도 진도의 밤 최고의 상은 단연 ‘밤이 무서워’ 상이었다. 이 상을 받으려면 배우자의 확인이 있어야한다고 하자, 정순옥이 일단 자기에게 상을 달라고 하여 친구들이 모두 뒤집어졌다.
이럴 때 사회자는 신바람이 난다. 자기 한 몸 망가져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동창들이 나 때문에 많이 웃었다며 추켜세울 때면 여간 흐뭇하지 않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법,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않는가!
감동받을 때마다 “미쳐부러!”를 연발하던 문화해설사가 생각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판소리와 민요를 불러 가며 흥에 겨워 자기 고향을 알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내년에는 환갑이 되는 해이니 임원들이 또 여행을 계획할 지도 모르겠다. 올 한 해 허리를 튼튼히 만들어 놓아야겠다.
친구들아, 졸업 50주년 60주년도 함께 하는 거지?
미쳐부러! 참말로 미쳐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