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앞에서 망신
2009.07.30 07:40:09 조회647
나는 글을 써서 어디에 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단한번 23년전에 일본,
대만, 홍콩을 여행한 글을 교지에 실린 게 전부다. 그런데 요즘 동문홈피에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써본 사람이 아니니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지만, 그 작
업을 통해 이제껏 해보지 않던 나에 관련된 많은 추억들을 하나둘씩 꺼내올
린다. 매우 흥미롭다. 아울러 학창 시절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과 사건들이
떠오르면 주저하지 않고 다 여기에 올린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나의가족,
이웃들까지도 등장한다. 모두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고 이 장을 통해 다시
생각난 사람들이니 그 기록을 하는 바이다.
능수버들로 유명한 천안삼거리에서 한 20분쯤가면 내가 살던 시골이 나온다.
초등 1학년까지 다녔던 곳. 양조장집 막내딸. 위로 3명 아래로 3명 형제가 있
고 외가는 서울였다. 남을 위해 죽고 못살던 아버지는 양조장을 형제들에게 넘
겼으나 거의 뺏긴 셈이라고 들었다.
초등 1년을 마치고 가산방매한 우리 가족은 서울로 왔고, 아버지는 처가살이 비
슷한 상황에 빠지자 자존심이 상해 아예 백수로 전업을 하셨다. 그 틈을 잇기 위
해 큰언니가 학업의 꿈을 포기하고 외가댁 밑에서 훈련을 받으며, 우리 가족
을 부양하는 소녀가장이 되고 말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큰언니는 한마다리로 큰나무였다. 언제나 의욕이 왕성하고 자신보다는 남을 더 배
려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언제나 주위를 환하고 편하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한동안
같이 살던 홍대 서양화과에서 추상계열을 공부하던 사촌 오빠는 한살 아래인 우리 큰
언니를 큰절하듯 존경했다.
그런데 고2 때부터 집안사정이 나빠졌다. 그당시엔 누구나 입에 풀칠하며 자식들
여러명 공부시키느라 허리가 휘어질 때였다. 다 그저 그리 살던 시절이다. 그런데
장남이라는 이유로 호강을 꽤 한 편인 큰오빠가 정신못차리고 덜컥 사업을 벌려서
실패를 하는 바람에 집안에 먹구름이 밀려왔다.
고3때 등록금을 밀린 적이 몇 번 있다. 큰언니에게 차마 등록금 독촉을 못하고 밍기
적대다 학교를 지각하곤 했다. 구용서 담임선생님은 전혀 한말씀도 안하시고 지각한
것도 모른채 넘겨주셨다. 지금쯤 3-6반 반창회에 우리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옛추억
을 다 털고 싶은데 타계하셨다니 가슴이 너무 애잔해온다. 명색이 반장인데 지각도 하
고 무단 결석도 했다. 그때 지각했던 게 가끔 악몽이 되어 날 가위 눌리게 한다.
무늬만 반장한 것 같아 담임 선생님이나 반친구들에게도 미안했다.
고1까지는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꾸준한 공부벌레는 아니나 원하는 성과를 원하면 올릴
수 있었는데, 집안이 어수선해지니 2학년부터 전혀 공부에 능률이 오르지 않았고, 성과
도 올릴 수 없게 되자, 자신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활의 리듬을 잡으려 해도 잘 안
되어 혼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절대로 안나간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냥 참가하라는 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나선
전교 회장선거...
전혀 준비를 안한채 차례가 되어 단상에 올랐다. 인사를 하고 머리를 들자
갑자기 수천개의 도깨비불이 여기저기서 번쩍거렸다. 순간 눈앞이 아찔하며 현기증이
밀려왔다. 이미 마음의 중심은 잃은 상태였지만 일단 기호 0번 3-6반 000입니다는
제대로 말한 것 같다. 그리고는 중언부언, 횡설수설, 도깨비 장단에 춤추는 사람처럼
내 의지로 안되는 걷잡을 수 없는 마의 계곡을 헤매다 단상을 내려왔다.세상에 그런
홍역이 또 있을까? 그런 처참한 경우가 또 있을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니 그 일을 까마득히 잊었다. 아니 잊고 싶
어서 머리에서 지우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몇십년이 흘렀다. 어느날 우
연히 만난 입담세기로 유명한 정옥자가 뜬금없이 그 일을 들추어냈다.
“ 석임아, 너 회장 선거에 나와서 앞뒤 안맞는 말만 횡설수설 했지?” 순간 지난 악몽이
떠올라 가슴이 쿵덕댔다. 아.꿈인줄 알았는데 그게 엄연한 현실이었구나. 정옥자가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전교생이 다 기억하겠구나....아! 쓰디쓴 추억이
여! “ 그런 일이 있었어? 뭐 그럴 수도 있지. 석임아 괜찮아.”옆에서 마음 착한 이건숙
이 날 위로해준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던 당시의 집안 사정을 말해주었다.
“ 다 그런 이유때문이었지. 그렇게 도깨비 장단에 춤춘 사람 나말고 또 어딨니? 있으면
나와봐. 그리고 너희들도 나빴다. 그때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외롭고, 죽을 맛이었는데
아무도 내손 잡아주지 않았어. 옥자야, 네가 그때 지금처럼 까놓고 나에게 말해주지.
왜 안했니? 그랬다면 나도 변명도 하고 툭툭 털었겠지.“ 우린한참을 깔깔대고 웃었다.
그리고 난 깨끗하게 그 악몽을 씻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하니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도깨비장단에 춤추는 한이 있어도 기꺼이 가겠다. 더 멋진 도깨비 장단의
사오정을 연출하고 싶기도...아. 그리운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