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 연가 (2)
2009.07.08 20:08:28 조회845
중학교 건물 2층에서 입학시험을 치뤘다. 감독 선생님들이 무척 엄숙해 보였다.
처음엔 빳빳한 정신이더니 문제를 다 풀고 나면 긴장이 풀려선지 깜박 졸기도 했다.
마지막 시간엔 무료한 눈길을 무심코 창밖으로 던졌는데, 밖은 쌀쌀할텐데 따뜻한 햇살이
유리창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교실안의 열기가 후끈 달았던 탓이리라.
드디어 시냇물줄기가 물살이 거세지는 강물에 흡수되었다. 몸보다 더 큰 치수의 교복을 입고
자신도 모르게 눈빛을 세운 채 학교를 다녔다.
1학년생들은 어디가나 티가 나는 법. 어딘지 모르게 애숭이다. 애띠고, 순종적이고, 자기 표현을
잘 안한다.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순한 애들이다.
우리반 담임 선생님은 무용선생님. 훌쩍 큰 키에 출석부를 팔에 끼고 교실에서 발레 스텝으로 걸으셨다.
목소리도 우아하고, 몸동작도 우아하고, 옷도 예쁘게 입으셨다. 우린 경탄의 눈으로 선생님의 모던
한 스타일을 접하며, 거리감을 느낀 채 그저 말 잘듣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표정들이었다.
특별 청소 구역은 체육관. 대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공부에서 해방된 즐거움으로 청소하러 가면, 아직도
고등학교 언니들의 무용 연습이 한창이었다. 어린 눈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언니들이었다.
정말 멋지게 보였다. 고등학교 무용 선생님은 카리스마 선생님. 햇병아리 우리들은 끽소리도 못하고 한
구석에서 그 무용 수업이 다 끝날때까지 숨을 죽였다. 카리스마 선생님은 간혹 무대에 덩그라니 놓여진
낡은 그랜드 피아노의 건반을 치기도 하셨다. 우리가 어쩌다 수다를 떨면 우렁찬 목소리로 불호령을
내렸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 청소가 끝나면 우린 갑자기 배도 고프고, 억눌렸던 기분도 풀고자 교문
가까이 있는 먹거리 집으로 가서 후룩후룩 먹기도 하고 재잘재잘 재잘댔다.
그런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 생각을 하는 지금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