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알이 주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2005.09.13 16:11:09 조회679
어제, 9월12일 그러니까, 아직도 더위에 지쳐야하는 날씨지만, 우린 아침 8시 경에
고속터미널에서 만나서 천안으로 향했다. 천안에서 다시 시내버스로 북면 운용리에서
살고 계시는 이안희 선생님을 뵈러 갔다.
솔직히 말하면 밤을 줍는 봉사를 할겸 선생님을 졸업 후에 처음 뵙는 설레임으로..... 갔다.
세월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그때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반갑고 환한 미소로 포옹하며 맞아주시는 선생님이 정겨웠다.
학교다닐 때는 좀 쌀쌀하셨다는 느낌이었는데.... 역시 세월이 말해주네.
전원 풍경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속에 집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밤산 비탈을 오르내리며
우리는 반짝반짝 알이 통통한 밤들에게 그냥 반해 버렸다.
"나, 여기 있어, 나 얼른 집어요." 하고 외치듯 얼굴을 내밀고 쳐다보는 아주 실한 밤톨들 때문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처음으로 밤을 주워본다.
밤들이 이렇게 강한 생명력으로 자연의 기운으로 나에게 다가오는줄 미쳐 몰랐다.
전연 상상하지 못했던 경험이다.
순식간에 한바구니가 된다.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밤송이는
이미 허물을 벗고 자신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몸을 내민다.
반짝반짝 윤기나는 탱탱함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인지 밤에게서 처음으로 느끼는 흥분이었다.
정옥순, 김청자, 이종례, 정순영, 방수자, 정경숙, 송정자, 정규자 그리고 나, 신선
선생님도 건강한 모습이고, 남편 장교수님도 건강하신 모습, 근육질의 멋진 모습이 전연
노인이 아닌 아름다운 농촌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존재로 느껴졌다.
옥순이와 청자는 무겁게 장만해간 반찬들을 가지고 선생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담당하여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았고 그 식탁은 한참의 반가운 토론 장으로 이어졌다.
시원한 야외 발코니에서 농촌 풍경을 마음껏 즐기던 식탁을 물리고 장교수님이 준비하신 파리에서
느끼는 향이 듬북한 원두커피와 이태리 칸초네 음악의 절묘한 조화에 취하는데,
장교수님의 말씀이 바로 15기 미인들 때문이라고 하셔서 한타탕 웃음 꽃이 피었다.
장교수님과 이안희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북면의 운용리는 독립기념관과 박문수의 묘지자리와 함께
삼용이 있는 고장으로 유명하다고 하셨다.
아무튼 우리는 밤을 더 줍고 싶었다. 서울로 돌아와야되는 조급함만 없었다면...........
여름의 끝자락에서 밤과의 황홀한 만남은 더 길었을 텐데..., 아쉬움 속에 돌아 와야 하는데,
그 밤들이 자꾸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금년은 해걸이로 풍작이 아니로고 하는데, 밤 수확으로 선생님 내외분의 즐거움이 더했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한보따리씩 싸주신 밤을 힘에 부치게 들고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모두들 밤 열심히 먹고 이 아름다운 가을을 즐기겠지?
참, 아련히 맡아지는 벼가 익는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갑짜기, 발길을 옮겼던 이른 가을 여행,
선생님을 뵙고, 밤과의 황홀한 만남을 가졌던 일.... 여행에서 얻은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