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단편소설)
영숙이
소녀시절 가장 정다웠던 반쪽 같은 내 우정의 이름이다.
그녀는 20살도 다 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갔다.
나는 그녀를 생각하면 불같이 타오르다 가버린 전혜린이 떠오른다.
그녀는 문학이 아니고 불같은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소녀시절 학업이 끝나면 미술실에 남아서 석고상을 스케취 하였다.
미술 선생님은 날마다 숙제를 남겼다.
검은색으로 계속되는 뎃상
나는 그리는 대신 , 그토록 정신없이 그리고 있는 영숙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림에 거의 미쳐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나는 심정을 고백하였다.
“난 그만 두겠어!
이 검은 색
정말 피곤하고 재미없어.”
“그런데 왜 선생님은 이 스켓취 만 끝도 없이 시키는 것이지.”
나는 지루함을 불평하였다.
그녀는 내가 그림보다는 문학에 마음을 돌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 너 문학반에 들고 싶지.
나도 알고 있어!
중자와 가깝게 지내는 것도.”
“그래, 나, 시라는 것을 쓰고 싶어. 매력있어 .마음을 쏘다 놓을 수 있다는것.
난 문학반으로 갈까해.”
“나도 알고 있어.
나한테 미안해할 것 없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야
우린 서로가 자유야.”
........,
“나 약속 할게
난 변한 게 없어
그전처럼 전시회도 다니고, 나는 너와 말하는 것도 , 돌아다니는 것이 좋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알았다니까.”
그녀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우리는 다른 반으로 편성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학교가 끝날 무렵이면 내가 복도에서 기다리거나
운동장에는 소나무가 한 구루 서있었다. 영숙은 그 멋진 소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이면 그림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던가.
복잡한 서울 거리를 버스를 갈아타고
예술을 하는 곳이면 어디든 누비고 다녔다.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가 배가 고프기나 한 것처럼......,
주말이면 덕수궁 앞에서 만났다.
첫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덕수궁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숲에 가득히 얹힌 소복한 눈을 털면서 우리는 즐거워하였다.
“너 요즈음에 신문에 글 쓰는 것 재미있더라.”
그녀는 나의 글을 좋아하였다.
나는 내 동생들과 일어나고 있는 즐거운 일들을 학교신문에 일기처럼 기록하여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3학년이 되자 서로가 대학준비로 바쁘게 되었다.
오랜만에 덕수궁 미술전을 찾았다.
등나무가 있는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하였다.
“너는 국문과를 가겠지?”
“아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나는 약대를 갈 거야.”
그녀는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이야”
“그래, 나도 많이 생각해 봤어.”
“나 까지 떼버리고 문학반에 들어가더니 ......, ”
내 변화에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알잖아,나는 수학도 음악도 체육도 문학도 다하고 싶은걸,
사실은 나에겐 그림도, 문학도, 아주 성공할 만큼 재질은 없다고 생각해. 그게 중대한 이유야”
“그럼 문학반 노 선생님도 알고 있어?
너를 딸이라고 하던데......,”
“호호
상관없어.
그래, 네 말대로 우리는 자유인이야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은......,”
우리는 다시 깔깔대었다.
나는 부모님 말을 듣기로 하였다.
나 역시 그림이나 문학은 약대를 나온 후에도 취미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다.
돈을 번 후 에, 하고 싶은 예술도 맘대로 할 수가 있다.
돈은 우리를 구속한다 .
하지만 더많은 자유를 가져올수있다고 믿은것일까.
나는 그해 약대를 들어갔고 영숙은 미대로 향하였다.
미대를 들어간 그녀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파리를 가야겠어. 될 수 있는 데로 빠르게 말이야.”
그녀는 주름진 주홍색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
나는약대와 아무런 인연이 없음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다하고싶었지만 마음은 비참하였다.
후회하고 고민하였다. 그 뒤로 나는 약대강의실과 문과대학 강의실을 전전하였다.
몰래 약대실험실을 빠져나왔고
김남조교수의 시나 이어령교수의 문학 평론을 독강하면서 복잡한 머리를 씻어내고 있었다.
또 그 무료한 생각을 지우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힘들게 해야 했다.
나는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대학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밀리는 약대 시험과목들과 자신을 학대하며 생활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영숙도 나도 바빠진생활에 서로를 잊고 있었다.
하루는 전화기를 붙잡았다.
“영숙아 잘 있어?”
“윤자야 왜 그리 소식이 없었어.
나 조금 아파”
“뭐라고 아프다고. 감기 걸렸구나. 요즈음 독감이 심하다는데.”
“우리 만나야 될 텐데.”
“그래 나도 요즈음 시험 때문에 너무 바빠서......,.
나 외우는 것 싫어하는데 왜 이렇게 외울게 많고 계속시험인지 모르겠어. 잘못 들어왔어. 사는 게 무 재미다. 무 재미 . 호호호
"그래도 열심히 해 ! 넌 언제나 이것 저것 발란스를 ?추어야 살맛이 난다고 했잖아"
"발란스 호호호."
그래 내 뇌세포속엔 그런 메지시가 들어 있나봐! .
감기 낳으면 연락해줘 우리 너무 오랫동안이야.
그동안 말 통하는 친구가 없어 나도 외로웠거든!”
“나도 할말이 많다.
"그래 무슨 신 소식이라도 있니? "
"윤자야 나 말이야 연애 시작 했어”
“뭐라고?
여자대학교에서 누굴 만났다는 거야.
차마 선생님은 아니겠지?”
“호 호 잘도 맞추네. 총각 교수님이야.”
영숙 은 행복함으로 들떠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영숙은 귀엽고 영리했다.
그녀는 사랑 받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 알았어. 나도 빨리 듣고 싶은 데......누군지 샘이나서 죽겠네."
"호호 샘내지말아 .이제 시작이니까,”
“우리 또 연락해”
“잘 있어.”
이것이 그녀와 마지막 대화였다.
내가 다시 전화했을 때 그녀는 부재중이었다.
나도 점점 더 바빠져서 과외공부 시키는 것과 연결되는 시험준비로 지칠 정도가 되었다.
몇 개월이 더 지나갔다.
나를 찾는 전화가 있었다.
“저 영숙의 동생 형숙 인데요.
윤자 언니시죠? 꼭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방에 앉아있었다.
.
우리는 둘 다 말도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도 언니가 그렇게 쉽게 떠날 것은 생각도 못했어요.
언니자신도 마찬 가지였어요. 무척 살고 싶어 했어요.”
나의 눈에서 눈물이 쏘다져 내렸다.
형숙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보는 동생은 언니와 달리 더 키가 크고 성숙해보였다..
그녀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언니가 언제나 부러웠어요.
그림 잘 그리는언니가 부러웠어요.
그림은 산뜻하고 선이 율동적이고 항상 살아 있었죠.”
“그래, 나도 언제나 언니의 그림솜씨에 감탄하고 있었어.”
나는 그녀의 말속에서 그녀도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짐작하였다.
“언니가 마지막 그림을 끝내고 싶어 했는데 ......,
그게 잘 되지 않았어요.......,
그 그림을 윤자 언니에게 주라고 부탁하였어요.”
......,
“윤자 언니가 그림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나는 목이 멨다.
그녀는 감기를 앓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병명은 그 당시 성도 모르는 백혈병 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와의 전화 후로 쭉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왔다.
메마른 그녀의 무덤에 꽃을 뿌리면서
혼자 살고 있음이 사치스럽고 슬펐다.
그녀가 그렇게 떠남은 ......,
빈 공간과, 깊은 어둠의 터널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명랑하게 쓰던 내 글들이 우수 속으로 밀려다녔다.
어쩌면 지금까지도.......,쓰다보면 그렇게 흐르고 있다.
그녀에 대한 폭발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쓴 글이 잡지사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과 상금을 보내왔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처음으로 우정이 무엇인지를......,알게 되었고, 그 꿈같은 시절이 내게 있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그녀는 잠간 살아있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초롱초롱한 당선작들을 만들어 , 예술 속에 혼신을 다하던 한 젊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녀는 유화의 화확품의 독으로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그녀가 파리에 갔더라면 , 지금 쯤 그녀가 원하던 대학교수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수는 ?
젊음
신은 왜 이 모든 아픔을 우리에게 내려놓고 그녀를 먼저 데리고 간 것일까.
형숙은 몇 번의 전화를 주었다.
그러나 만나자는 약속은 서로가 미루고 있었다.
그때의 심정으로 그 그림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지만
형숙이 그 그림을 갖고 싶어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뒤로 결혼을 하였다.
캐나다 이민 길에 올랐다.
귀여운 영숙이 그리울 때 나는 사진첩을 들여다보았다.
먼 땅에서 숨 가쁘게 이민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30여년의 세월은 먼지도 내지 않고 바쁘게 흐르고 있었다.
자리 잡기 힘들었던 이민사회도 시간이 지나자 뿌리가 내리고, 국제적인 동창회의 모임소식이 오고가기 시작하였다.
뉴욕에서 대학동창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이곳까지 전달되었다. 더구나 우리 동창이 회장이 되어 열기를 띠우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후배5 명과 뉴욕 행 비행기 길에 올랐다.
우리는 비행기 속에서부터 즐거운 웃음과 새로운 만남의 열기 속에 싸여 있었다..
힐톤 호텔에 도착하였을 때, 서로 찬찬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얼굴과 몸들이 변해있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정다운 친구들은 손을 잡고 뛰기도하였다..
그 순간에 나는 영숙을 떠올리고 있었다.
네가 살아있다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곳에 사는 선배들의 대우로 동창회는 더욱 흥겨워 졌고 구룹을 지어 날마다 다른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 일행6명은 동창회가 다 끝나고 다시 구룹이 되어 로스안젤스 쪽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나는 가는 길에 데스밸리를 꼭 구경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는사람이면 한번쯤은 꼭 구경하고 싶은 곳일 것이다.
신이 자연 속에 유화를 그리고 색칠해 놓은 곳이니까. 몇 만년 전에 볼케노가 자연의 지형을 높은예술의 경지로 만들어놓았다.
특히 이곳의 예술가의 드라이빙 코스는 멋진 자연적인 색깔로 유명했으며, 단테의 전망대도 구경하고 싶었다.
모두들 동의 하였으나 후배인 희자의 친구가 라스베가스에 살고 있었는데 가는 길에 그녀의 집을 먼저 방문하자고 하였다.
택시 운전수가 친구의 집을 찾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급주택가의 앞뜰에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고목의 도토리나무가 무성한 잎을 이루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선배님들
희자는 저의중학교 친구예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같이 찾아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희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는 희자를 부둥켜안고 반가워하였다.
정원에는 우리를 위해서 불고기파티가 준비되고 있었다.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의사였고 그녀는 자신이 화가라고 소개하였다.
우리는 친구들에대하여 이야기하다가 유명한 화가의 이야기로 접어들었다..
반 고호는 살았을 당시에 그림두장을 팔았다는 둥
캐나다의 유명한화가 에밀리커도 판잣집 같은 캠퍼에서 살았으며
그림 한 장에 2불씩을 받고 친구들에게 준 것이 ......,
그리고 요즘에 발견된 그녀의 초상화가 얼마나 하는지를 ......,
예술가는 항상 가난하지만 비즈니스 하는 사람은 예술가 가 죽은 뒤에 부를 만든다.
“김 화가는 그림을 많이 파셨나 봐요”
그렇게 묻자
“호호호 그게 아니지요 저의 남편은 돈은 벌고 저는 그림에 쓰고 있어요.”
“아 그래요,”
“요즈음엔 화가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을 하지요.”
“그래야 좋은 그림을 그릴수가 있으니까요.”
“정말 식구를 그림으로 부양해야한다면 개나 고양이를 그려야겠지요.
잘 팔 수 있는 상식적인......,“
“그래요
그러나 그런 창작력이 없는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요.”
우리는 문학과 그림예술이 어떻게다른지도 얘기하였다.
“글쎄요”
“문학은 독자가 있어야 행복하지만
그림은 보아주는 자가 없어도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거지요.
누구나 자신들의 그림 속에 아주 도취되어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예요.”
“그렇지요. 완성된 그림이 주는 즐거움도 말할수없고요.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내가 그리기 시작하였다는 산 그림에 그녀는 부러운 듯 말하였다.
“그런 그림은 실제로 살아있는 그림이지요.
직접 그 높은 산위에서 스켓취를 하시나요?”
“그럴 시간은 없지요. 산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소비해야하니까요
사실은 사진을 여러 장을 찍고 그 주위의 모습을 기억 속에 메모 하여 가지고 내려오지요
.”
나는 얼마 전에 헬리콥터를 타고 산봉만 찾아다니면서 그리던 화가가 추락되는 사고 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눈 속에서 텐트를 치고 그리는 멋진 장면이 소개되었지만, 화가는 춥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화가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고 그것으로 부를 찾은 사람이었으나 불행한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선배님도 그림을 전시회를 정규적으로 하시지요?
“글쎄요, 내 그림은 그렇게 널리알려질 수준은 아니예요..
아직도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팔 수준도 아니고요.”
“팔고 싶지 않으신 것이지요.”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친구 중에는 사실 팔고도 후회하는 사람도 많아요.
한번 그린그림은 똑같이 다시 그릴 수는 없으니까요.
또 보면서 계속 고쳐야하니까 끝나지 않는 작업이지요.”
나는 몇군데 산경치만 그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림은 곧 끝 이 나게 되지요. 몇 점 만 더하면 더 그릴 곳이 없으니까요.”
.
우리는 지구의 온 난화에 대해 심각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눈 산의 모습은 다음 세대에겐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지요.
히말리야가 눈옷을 벗으니 볼품이 없다면서요
이제는 공룡처럼 사진으로만 에베레스트 빙산을 볼지도 모르지요.”
“사진으로 그 모습을 보장하는 것도50년 정도겠지요.”
“르레상스의 유화처럼 몇 백 년 도 변함이 없으려면 유화로 보관함이 더 근사한 이야기지요.”
아름다웠던 자연을 그대로 그리고 싶음을 이야기하였다.
후세에 자연을 더 잘 지켜 주길 바란다는 나의 심정도,
결과적으로 정성을 다해서 시간을두고 그린다면
작품은 100년이 지난 다음에는 그자연의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10년 전에 올랐던 웨지 산의 아름다운풍경이 이미 눈이 해마다 녹으면서 변화하고 있음을 나도 모르게 안타깝게 설명하고 있었다.
시대는 흘러간다.
오래전 이민온 농부가 그때 당시의 농사짓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 이 사소한 그림 한 장이 역사적인,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부각하였다.
눈 산과 호수와 원시림과 산맥을 제대로만 그 릴 수 만 있다면......,
이 시대는 덧없이 지나간다고 해도, 이름난 화가가 아니라도 이 산의 모습은 그대로 남길수 있을것이다.
모두가 바배큐를 맛있게 먹는 동안 난 그녀에게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럼요”
그녀는 나를 거실 옆에 달려있는 자주색 문을 열어주었다.
가운데는 거실처럼 양탄자가 깔리고 빈공 간에 창문이 없었다. 대신 휘황한 산델리야가 중앙에서 비춰 내리고 있었다.
주위 벽으로 크고 작은 그림들이 미술관처럼 잘 정돈되어있었다.
그녀는 현대화를 그리고 있었다.
화려한 색체가 상상적인 바다를 이루고 있었고 공간을 이루고 있었고
하늘과 산을 채색하고 있었다.
그림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림은 그림자신이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화가자신의 삶으로도 설명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림은 인간의 마음을 끌어당겨야 한다.
그림이 그림 속에서 멈춤이 없이 우리의 시선과 영혼을 배회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풍경화라면 그날의 모습을 기후와 ?빛을 그대로 반사하고,예술가의 그리고 싶어한 마음을 읽을수있어야한다.
나는 벽 쪽으로 찬찬히 돌다가 한 그림 앞에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다시 그녀가 들어 왔다.
내가 서있는 곳으로 왔다.
“그럴 줄 알았어요. 선배님
선배님, 참 좋은 그림이지요.
누구나 이 그림 앞에서 발길을 움직이지 못한답니다.
이 그림을 소개하고 싶어 제가 들어왔어요.
어쩐지 오늘은 속에 있는 말이 하고 싶어져서요.
왜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아요.”
“이 그림......,
고백하지만 이 그림은 제가 그린 것이 아니예요.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돌아가신 저의 언니가 그렸어요.
“그래요?”
나는 겨우 대답소리를 내었다.
그때 나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떨리고 있었다.
“언니가 그린 마지막 작품이거든요.
그녀는 말을 끊었다.
“저 그림을 언니가 친구에게 주고 싶어 했는데......,”
언니가 들려준 두 사람의 우정은 특별한 것이었어요.
“언니는 그림을 그리면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광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저 그림이 저를 미치게 만든 것이지요.
그림을 꼭 가지고 싶었거든요.”
.........,
“ 제가 마지막 작업을 하였어요.
그리고 대상까지 받았다면 믿으시겠어요?”
......,
몇 사람이 사고 싶다고 전화가 왔었지요.
한사람은 제가 원하는 가격을 다 주겠다고 하였지만
저는 거절했어요.
글쎄요, 저그림은 제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내 가슴속으로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희자와 친구들이 떠들면서 화실로 들어왔다.
“어마나, 참 대단하구나!”
“이 화실 정말 멋있다.”
“그래 칭찬해주어 고마워. 희자야 ”
그녀는 그들 대화 속으로 묻어 들어갔다.
나는 그림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한 여학생이 학교 교실책상에 턱을 고이고 앉아서 운동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을 듯 말 듯한 곳에 소나무가 서있었다.
그 밑에서 한 소녀가 발끝을 비비며 이 쪽을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턱을 고이고 소녀가 앉아있는 책상
숨 막히게도 그 자리는 키 가 컸던 내가 항상 앉아있던 자리였다.
그림 밑에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 친구”
2007년 6월29일
최윤자
후기
옛 친구가 그리워 적어본글입니다...
나는 그 후 형숙을 만나지 못하였고 그 그림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에 소년의 인물화로 대상을 받았던 친구이기에 .......,
내게 주고 싶어 하였던 이 마지막 그림 속에
그녀와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