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抒情
12월은 막장이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쓰디쓴 달력의 마지막 장이다. 언제나 그렇듯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 같은 한해라는 생각에서다. 마침내 12월은 찢겨져 휴지처럼 버려진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휴지가 아니다. 좋건 나쁘건 내 삶의 한때를 채워준 활자 없는 책의 한 페이지다.
그 12월을 뒤로 하고 비로소 새로운 면죄부라도 받아든 듯 새 달력 첫 장, 일월을 맞는다. 그런데 마감이 산뜻하지 않은 지난달이 뒤 꼭지를 자꾸 잡아당긴다. 난감하네~ 별주부의 난감송이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호미곶이나 명소를 찾아 일출을 보며 새해 소원을 빌지도 않았고 새로운 마음가짐도 없이 해가 바뀌면 무언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마치 매듭 없이 풀어놓은 실타래 같다고나 할까. 뭔가 새로이 마음을 세우고 빌었어야 하는데 싶은 아쉬움도 자꾸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그런 줄 알면서도 기대와 희망의 새해맞이에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다. 그런들 저런들 앞으로의 시간에 내 의지와 고삐가 얼마나 통할까 싶은 냉소적 소심함이 늘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은근한 바람이 인다. 올해는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희망의 냄새가 짙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탓이다.
기도라든가 비는 일은 그냥 마음속에 염원으로 담아둘 뿐이다. 소리 내어 말하거나 드러내놓고 부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으로 알아서일까. 그저 평상심으로 맞는 일월인지라 차라리 그 느낌 속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추위를 즐기기로 한다.
송년이니 해맞이니 하는 떠들썩한 시간들은 다른 이들의 일이다. 그래도 일월의 문턱에 들어서면 어쩐지 허전해지며 차분해진다. 축제가 끝난 후, 잠시 마음 둘 곳 없어진 빈 마음이 비로소 마주하는 겨울의 얼굴은 강고하면서 고요하다. 추위는 이제 일상에 온전히 스며들어와 있다. 마치 강물이 강변 얕은 곳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하는 것처럼 추위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던 우리의 몸과 마음도 그제야 겨울로 성큼 들어선다.
해마다 일월이 되면 드디어 깊은 바다 밑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배처럼 안도감과 휴식을 즐기고 싶어진다. 지난 한 해를 살아내며 부딪혀 왔던 온갖 잡답과 근심, 그리고 격랑과도 같았던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고요해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치 처음 장만한 통장에 적힌 적지 않은 액수의 금액을 보고 있는 것처럼 뿌듯해진다. 아, 앞으로 일 년이란 시간이 남아있구나. 그때만큼은 차곡하게 채워나가고 싶은 마음에 결심 같은 것을 다져본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속수무책으로 보내버릴 것을 벌써 알고 있다. 계획이라든가 뜻을 세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경험하다 보면 굳이 애쓰지 말자는 쪽으로 그만 기울고 마는 것이다. 연초부터 게으른 꿈이 먼저니 맞이할 한 해도 보나마나 빤하지 싶어 혼자 얼굴을 붉힌다.
겨울의 한 가운데 1월은 땅속 깊이 묻어둔 먹거리처럼 발효되고 있다. 봄과 여름은 어딘지 부풀어 오르기만 할 뿐 도무지 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은 그와 반대다. 계절이 깊어진다는 표현은 가을과 겨울에 주로 쓸 뿐, 봄과 여름에는 쓰지 않는다.
겨울의 심연에 가장 가까워져 있는 달, 일월. 삶의 분주한 소란은 여전한데 동중정(動中靜)의 고즈넉함을 문득 문득 느끼게 하는 깊은 침잠. 추위에 포위된 일상에서도 문득 찾아온 설렘의 정체는 무엇일까. 차고 투명한 빙점으로 응집되어 숨고르기에 든 추위는 어쩌면 봄을 위한 힘을 고요히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빙이라든가 빙점 같은 단어들은 일월에만 더욱 단단해지는 빛나는 보석 같은 것이다. 차고 깊은 심연에서 빚어지는 기다림의 결정체다.
추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켜를 더해 그 위세가 더 대단해진다. 겨울이 그린 시간의 포물선은 자꾸 아래로 내려온다. 드디어 포물선은 맨 밑바닥에 닿아 변곡점을 이룬다. 그렇게 추위 한가운데 포위되어 있는 동안에도 포물선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겨울엔 유난히 역주행 하는 추억들. 눈 쌓인 산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학창시절의 두려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나지도 않는다. 다시 한 번 눈 덮인 산촌마을에 발이 묶여보고도 싶고 대청마루에 연탄난로가 있던 그 시절처럼 따뜻한 난롯가에서 불을 쪼이며 가물가물 졸음에 겨워보는 시간도 그립다.
그리움에도 온도가 있다. 다른 어느 계절보다 추위 가운데 맛보는 그리움의 온도는 속 깊이 타오르는 뜨거움이 있다. 그러니 차고 단단한 얼음장 아래서도 그리움은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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