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필살기
2014.08.23 10:28:37 조회1326
오늘 따라 모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몇 마리가 번갈아 곡예 하듯 눈앞에서 맴도는 것이, 나의 존재 같은 건 아예 무시하는 눈치다. 갑자기 얼굴 가까이 바싹 스치며 지나간다. 이건 숫제 제트기의 근접비행처럼 위협적이다. 당황해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사람 체면이 말이 아니다. 혼자 머쓱해진다. 어느새 저만큼 떨어져 허공을 맴돌고 있는 품이 제법 여유롭다. 잘만 하면 잡히겠는 걸. 자세를 잡는 사이 놈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도대체가 종횡무진이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놈의 동선을 따라잡기에는 내 몸이 너무 둔하다. 하긴 그렇게 작은 것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비행 밖에 더 있을라고. 날 수 있는 능력 하나로 치자면 사람은 모기보다 분명 열등한 존재일 수밖에.
모기는 야행성이라는 인식은 이미 한물 가버렸다. 방충망에 모기장, 그리고 모기향과 살충제까지, 밤만 되면 온갖 방어수단을 동원하는 인간들의 허를 찌르자는 것인가. 요즘은 오히려 대낮에 모기에게 당하는 일이 잦았다.
퇴근해서 보면 다리, 특히 발목 부분에 물린 자국이 몇 개씩 있곤 했다. 다리는 할 수 없이 내준다 치자. 상체를 물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상체는 놈들의 공격을 알아채기 쉬워 방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왼쪽 팔꿈치에 뭔가 느낌이 온다. 눈으로 확인할 것도 없이 먼저 오른 손을 날린다. 놓쳤다. 간발의 차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과로 볼 때 생각보다 큰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당장엔 물렸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안다. 가려운 건 그때부터다. 감쪽같이 치고 빠지는 것이 소리 없는 킬러, 닌자를 닮았다.
이번에는 볼에 느껴지는 낯선 이물감. 머리카락은 아닌데 싶은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뺨을 한 대 후려친다. 그러나 놈은 어느 새 시치미를 떼고 유유히 날아가고 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애꿎은 내 볼만 얼얼하다. 이제 놈은 내가 나의 따귀를 때리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자 하찮은 모기를 상대로 감정의 비등점이 올라간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와 모기가 동격이 되는 순간이다.
놈들은 비상한 전략가임에 틀림없다. 컴퓨터 모니터에 앉기도 하고 자판기며 물컵 가장자리, 아니면 전화기 모서리까지 전천후 착륙이다. 일부러 애매한 경계를 골라 앉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 되었다는 그것들이 그새 진화라도 한 것일까. 평평한 곳에 앉으면 잡히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는 눈치다.
자판기 자음과 모음 사이에서 놈이 쉬고 있다. 좀 어렵겠다 싶지만 그래도 눈앞의 사냥감을 그냥 둘 수야 있나. 딴에는 부드럽게, 그러나 힘을 응집하여 내려친다. 아뿔싸, 놈은 이미 허공에 떠 있고 작업 중이던 화면에는 ‘ㅈㅈㅈㅈㅈ...’ 알 수 없는 부호가 두 줄이나 그어져 있다. ‘ㅈㅈㅈ’라니 놈의 혀 차는 소리는 아닐까.
마침내 적당한 곳에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놈도 방심할 때가 분명 있다는 증거다. 순간, 온 신경을 다 모아 내려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분명 제대로 맞췄는데 손을 떼보니 아무것도 없다. 공연히 책상 위의 집기들만 흩어졌을 뿐. 다 잡은 고기를 놓친 낚시꾼 심정이 이럴까. 아깝다 못해 허탈하다.
그렇다고 늘 실패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과가 만만치 않을 때도 더러 있다. 아무리 불편한 곳에 자리 잡았어도 피하지 못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허실삼아 후려친 순간, 바닥으로 맥없이 떨어지는 놈을 보게 될 때, 그 시원함은 한여름의 더위조차 잠시 잊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날아가는 모기를 향해 본능적으로 손바닥을 마주쳤는데 뜻밖에 잡힌 경우도 있다. 압화처럼 손바닥에 납작 눌려 있는 모기를 발견할 때의 쾌감이라니. 얼마나 좋으면 그놈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몇 번이나 드려다 보며 즐기고 있을까. 개선장군이 따로 없다.
그보다 더 짜릿한 경우는 빗맞은 타구가 홈런을 쳤을 때다. 난데없이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직선, 곡선으로 선회하는 모기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손을 휘둘렀지만 그만 놓쳐버렸다. 아니 놓친 줄만 알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책상 위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손끝에 빗맞고도 그처럼 생을 마감하다니. 그렇게 쉽게 미물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감히 사람을 놀렸단 말이지. 구겨진 체면이 조금은 펴진다.
날기를 멈추고 긴 다리를 모은 채 납작하게 눌려있는 모기 한 마리, 다리 몇 개로 남아있는 모기의 질량은 보잘 것 없다. 내가 맛본 쾌감에 비해 너무 볼품이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한참을 두고 보며 흐뭇해한다. 그 순간, 왜 모기를 잡았는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그저 그것이 내 손에 잡혔다는 사실이 즐거울 뿐이다. 혹시 이런 것이 살생의 쾌감일까. 하찮은 해충이지만 생명임엔 틀림없는 것을.
인류가 생존의 수단으로 삼았던 사냥에 살생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잠들었던 원초적 본능이 틈만 있으면 언제라도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살생의 쾌감이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낯선 두려움이 소름처럼 돋았다.
(2011년 에세이문학 여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