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재단 설립이야기
최경옥22 (당시 총동문회 총무)
2012년1월5일 총동문회의 업무를 인수인계 받고나니 갈 길이 멀어 까마득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과 그해의 10월로 예정된 국제동문회를 생각하여 독수리 타법의 워드실력과 무지에 가까운 컴퓨터다루기 실전을 하나씩 배워가며 임원들의 연락망 작성하랴 회의 진행 순서와 요령을 익히랴 머릿속이 한참 복잡할 때였다.
생각지도 않은 정말 꿈같은 네잎클로버의 행운이 찾아왔다.
7기 선배님께서 몇 년 동안 생각하셨던 장학기금을 내어 주신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3장이라는 말씀에 3천 만원인줄 알았는데 3억 원이라니 그 큰돈을?
2012년 2월 7일 임시임원회가 양재동 L타워에서 있었는데 목소리가 카랑카랑하시고 키가 작아 ‘작은거인’이라고 불리시는 정지홍 선배님을 그곳에서 처음 뵙게 되었다. 큰돈을 선뜻 후배들의 배움을 위해 내주시면서 어려워서 대학 진학을 못하는 후배를 위하여 써 달라 하신다.
너무 놀라운 제안에 대한 반향의 힘이였을까? 맞은편에 앉아 계셨던 16기 선배님께서도 손을 들어, 천만 원을 약정하시면서 10년 후, 정지홍 선배와 같은 금액을 장학기금으로 내시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모두 기립박수를 치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애교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자 27기 후배 한분은 정지홍선배님께 센죤(St. John)투피스 한 벌을 선사해 드리겠다고 하신다. 역시 수도여고 선후배의 끈끈한 우애와 감동을 확인 할수 있었던 장면이였는데 정작 히트 친 한마디는 정지홍 선배님께서 “센죤이 뭐야?” 하시는 거였다.
부지런하시고 성실하시며 사치를 모르는 선배님께서는 센죤이란 그저 생소한 외래어일 따름인 분이셨다.
이 날 회장님과 실행위원들은 정지홍선배님과 함께 모교를 방문하여 이준순 교장선생님께 기부된 장학금내용을 말씀드리고 벅찬 마음으로 돌아와서 세무사를 만나 상담을 하였더니 공익장학재단이 아니면 정지홍 선배님께서 증여세를 내셔야 된다는 것이다.
장학기금을 내면 세금을 낸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우리는 장학재단의 설립안으로 의견을 모았고 그 일이 얼마나 험난한지 모르고 구체 계획에 들어갔다. 용산고등학교는 이미 장학재단 설립이 되어 있었고 많은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용산고장학재단 정관을 입수하고 우리에게 맞는 정관초안을 다듬고 재단법인 수도여고동문장학회라는 명칭을 지어 서울시교육청의 재단설립허가를 받는데 필요한 작업에 돌입했다.
10월에 있을 제주국제동문회만으로도 일의 양과 내용이 만만치 않는데 생전 처음 접하는 장학재단설립이라니 지나고 보니 모르면 용감한 법,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였다.
우선 장학재단 임원을 기부금을 크게 출연해 주신 동문으로 선정하고 재단설립에 필요한 서류 준비차 4월부터는 바쁘신 세무법인 충정 송파사무실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면서 법적인 문제, 세무적인 문제를 대표님과 세무사들께 여쭈어보고 서울시 교육청에 제출할 서류를 만들어갔다.
재단법인 동문장학회가 설립 되면 우선 동문들이 내는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교육청의 관리 감독을 피할 수 없어 투명하게 기금운용을 할 수밖에 없으니 안전하게 장학사업을 지속할 수 있으며 공익법인에게 주는 소득에 대한 세금도 환급받을 수 있게 되어 후배들에게 더 많는 장학금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재무는 장학재단 전용계좌를 만들고 보통재산과 기본재산을 나누는 작업을 몇 번을 고치고 배우면서 서울시 교육청 평생교육과에 낼 서류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공익법인 설립을 지원하는 평생교육과 담당직원은 아주 상투적인 말만 우리에게 할 뿐 서류를 반려하고 다시 만들라고 한다.
7월 10일에 제출한 서류에는 예비 장학재단의 임원에는 이사, 감사가 있는데 그 임기는 이사는 6명에 4년, 감사 2명에 2년씩인데 각 이사 감사의 취임 승낙서, 임감증명서, 주민등록 등본, 초본, 날인할 도장이 있어야 하며, 법인 등기 때도 필요하므로 2부씩 준비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비재단명이 수도여고동문장학회인데 특수관계인으로 볼수 있는 수도여고동문은 이사수의 1/5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정관상 이사 6명 감사 2명 총 6명의 1/5이면 박승련회장, 정지홍선배만 이사로 올릴 수 있고 나머지는 수도여고와 상관없는 인물들로 이사를 선임하여 이사회를 구성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학교의 예를 들으니까 담당 공무원은 그 학교 이름을 대면 감사 나갈 테니 밝히라는데 어이가 없었다. 우리는 의논 끝에 장학재단 임원예정자 부군들에게 이사와 감사가 되어 주십사 부탁하여 겨우 서류를 꾸며서 제출하고 설립허가 통보를 기다렸으나 무슨 이유인지 서류는 교육청에서 두달 정도 머물기만 한 것이었다.
기다림 끝에 모교로 현장실사를 나오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 했으나 다시 소식이 없었다. 평생교육과에 알아보니 모교 소재 행정구역인 동작교육청으로 보냈으니 보름정도면 심사가 끝날 거라고 한다. 계산해보니 10월 국제총동문회에서 장학재단 설립통과를 발표 할 수 있겠다 싶어 모두들 기대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총동문회에서는 제주국제백합동문회 준비가 한창이었고 해외에서도 장학금기부가 많았으며 국내에서는 각기수별로 단체 장학금 기부가 놀랄 정도로 많은데 서류가 동작교육청으로 넘어가서는 꼼짝하지 않고 소식이 없어 매일 전화만 하면서 애만 태우고 있었다.
어느 날 서울시 교육청 담당이 전화를 해서 “서류는 이상이 없는데 왜 승인이 안나는 거지요? 그런데 동작교육청은 가보았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아! 이건 아니구나’ 싶어 제주에 계신 박승련회장님께 급히 연락을 드렸다.
박회장님은 제주에 있는 사립학교 장학회를 방문하시고 서류내용을 검토하시며 교육청에 계시는 분께 도와주십사고 연락을 취하셨다.
앞으로 5일만 지나면 국제동문회가 열리는데 1부 순서에서 우리는 ‘장학재단 설립허가 승인’을 발표할 예정이었기에 매일 전화로 상황을 확인하던 차에 동작교육청의 우리담당자가 가정 사정으로 자리를 비워 일주일 후에나 출근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리가 비었으면 업무를 인계받아 처리하는 임시담당자는 없느냐며 큰소리도 치고 통사정도 하면서 제주도 국제동문회행사장으로 출발하여야 했다.
10월 22일 제주에 도착해서도 전화로 23일에는 꼭 발표를 해야 하는데 서류에 하자가 없고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게 문제라면 동작교육청에서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23일 아침에 다시전화를 드렸더니 임시 담당자라며 전화를 받는데 목소리에서 왠지 좋은 느낌이 들었다.
오후 3시 50분 핸드폰을 놓지 않고 손에 들고 이리저리 뛰는데 전화가 울린다.
“설립허가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발표하셔도 되겠네요.” 기쁨의 눈물이 이런 건가.
그 동안 함께 애 썼던 실행위원들의 노고가 떠올랐다. 회장님을 찾아 내가 먼저 얼싸안고 “회장님! 발표 하셔도 됩니다. 지금 연락 받았어요.”하자, 600명이 모인 자리에서 회장님은 우렁찬 소리로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2012년 10월 23일 지금 막 재단법인 수도여고 동문장학회가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설립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셨다.
우리는 한순간에 모두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목청껏 “수도 만세” “박승련! 박승련!”을 연호하였다.
우리 재단 설립에 마중물을 부어주신 정지홍선배님과 기금모금에 힘을 합해주신 동문이 없었다면 수도동문장학회는 설립될 수 없었다.
또한 모교사랑이 남다르신 박승련회장님이 동문들의 잠자고 있는 애교심을 불러 모아 하나로 엮은 수도의 대역사가 아닌가싶다.
[수도여고70년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