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다른 날보다 한 시간 빨리 모였다. 연유는 알지 못했다. 그 한 시간이 문제였는지 결원이 많아 연습실은 텅 비어 썰렁했다. 평소보다 훨씬 적게 모인 단원들. 아직 지휘자도 오지 않았지만 연습은 시작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의 지휘자 미안하다며 들어온다. 헐렁한 셔츠에 굴뚝바지, 운동화 차림은 여전하다.
그래도 노래할 때, 그의 드라마틱한 테너의 목소리는 우리의 귀호강을 책임져 준다. 아직은 지휘자를 걱정시키는
실력임에도 단원들은 그때만큼은 행복하다.
“틀려도 좋아요.’
“틀린다는 것은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틀리고 나면 자신이 알게 되니 고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어요.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춤을 좀 추지만 자신 있게…”
그리고 적은 인원에 실력도 부족한 앨토 파트를 향해서는
“소프라노에 지지 마시고 틀려도 좋으니 소리를 크게 내세요”
그리고 앨토가 나와야 될 지점에서 지지 말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그날 늦을 수밖에 없던 사유를 전하고 한 이틀 합창공연이 있었다며 그 말끝에 혼잣말처럼 ‘용산고등학교’
어쩌고 하는데 귀가 번쩍 뜨인다.
나도 모르게 ‘용산고등학교요?’ 그리고 연이어 ‘OB?’ 했더니 깜짝 놀란다.
“어떻게 아세요, 혹시?”
“네, 수도여고요”
우리는 쉬고 있는데 그들은 그동안에도 연습하고 공연까지 마쳤다니….
“우리 서로 찬조출연도 했잖아요”
“맞아요, 맞아, 수도여고 동문합창 공연할 때 우리도 찬조출연 했어요”
너무나 반색을 하며 정중히 인사까지 하니 그쯤해서 단원들이 의아해 할 것 같아
“짝궁학교였어요” 하고 해명을 해야 했다.
자기네는 시작한 지 4년밖에 안 되었고(나도 알고 있는 사실) 부지휘를 맡고 있다며 수도 동문합창의 근황을 묻는다.
“저희도 늦게나마 다시 하려고 했는데 감기니 코로나니 너무 결원이 많아 이번엔 못했어요”
“지휘자는 지금도 그 분인가요”
그러고 보니 그들이 우리 동문합창단 활동(?)을 보고 자극을 받아 합창단을 결성했고 우리 연습할 때
찾아와 자문도 구했으며 그들의 연습장인 장춘교회도 우리가 방문했던 기억이 살아난다.
그들의 4년은 우리 수도동문합창단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는 나도 모르는 사실도 알고 있다. 백합중창단도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어쨌든 그 시간은 반가움에 서로가 무척 유쾌하고 친밀하게 느껴졌고 연습이 끝나고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까지는 그저 지휘자와 한 사람의 단원일 뿐이었는데 갑자기 거리가 좁혀진 것 같았다.
지휘자는 연습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뒷문으로 슬쩍 나가는데
그날은 특별히 내게 친근한 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도대체 수도와 용산, 두 학교의 사이에는 무슨 마법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무조건 서로 반갑다. 오래 격조했던 사촌끼리 만나도 그렇게 반갑진 않을 것이다.
합창을 매개로 지난 시간, 교류가 있기도 했지만 그 만남이 그처럼 즐겁다니 나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하루의 끝자락 기분은 좋았는데 은근히 걱정도 된다. 수도동문합창의 명예를 걸고 내 파트를 잘 해내야 할 텐데,
일단 집에 가서 연습을 좀 더 해야 될 것 같다.